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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

이응노, 낯선 귀향! 고암 이응노 도불 60주년 기념 국제전

고암 이응노가 프랑스로 건거잔지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전 <이응노, 낯선 귀향>이  오는 9월 30일까지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립니다. 개막식날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대전 이응노미술관

<이응노, 낯선 귀향>2018.7.13~9.30



이응노 화백(1904~1989)은 60년 전, 50대의 나이에 유럽의 미술계에 도전했는데요.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세우고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우뚝 선 분입니다. 

1960년대 말, 정치적인 문제로 대전교도소(1967~9)에 수감된 적도 있는데, 프랑스 정부의 탄원 등으로 특별 사면되어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1977년에도 백건우, 윤정희 납치 미수의 배후로 몰려 곤욕을 치루다가 1983년에 프랑스로 귀화했습니다. 민주화 바람 이후 1989년 1월에 서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파리에서 별세해, 결국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일까요.  대전을 떠나고 거의 50년 만에 돌아오는 의미에서인지 반백년 세월이 훌쩍 흘러 그의 귀향은 낯선 귀향이 되었습니다.



 


문화강국으로 자부심이 상당한 프랑스 문화 당국은,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뛰어난 작가들에게 귀화를 권했다고 합니다. 고암 이응노와 문신 작가가 대표적입니다.

이응노는 불행하게도 한국전쟁 때 월북한 아들 문제와 관련해 수감된 후 고초를 치르고 결국 프랑스로 귀화했고요. 문신 작가는 1980년에 귀국해 고향인 창원에 문신미술관을 개관(1994)하고 1년 후 타계했습니다. 

 

 

2전시실에서 3전시실로 지나가는 복도에 전시된 프랑스 전시 포스터에서 이응노와 함께 한 문신 작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스터도 한번 쯤 살펴보며 지나시기를 권합니다. 





이번 이응노미술관 전시는 민선 7기가 들어서고 처음 열리는 국제 전시입니다.

프랑스 세르누쉬 미술관에서 이응노를 연구하는 학예사인 마엘 벨렉이 한국 관람객을 위해 직접 작품전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세르누쉬 미술관의 이응노 작품은 한번도 소장처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이번 기회에 마엘 벨렉은 세르누쉬 미술관과 퐁피두 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이응노 작품 중 29점을 대전의 이응노 미술관에 대여하도록 적극 협조했다고 합니다.   



작품 설명을 하는 프랑스 세르누쉬 미술관의 마엘 벨렉 학예사

민선 7기 허태정 시장이 이지호 관장(이응노미술관)과 함께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전을 관람하고 있다.



<1전시실-영감의 원천>


변혁의 격랑기를 정면으로 맞선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응노도 출생부터 타계할 때까지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1904년 대한제국 시대의 백성으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성장했고, 독립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가 1983년에는 프랑스로 귀화인이 되어 타국에서 타계했습니다.   

그 시절에 보기 드물게 시대를 앞서가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위 사진 속 관람객이 보고있는 이 작품은 이응노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인 1940년 대의 작품으로 '등나무(Wisteria)'입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2전시실-유럽 미술계로의 융합>


1950년대 남한의 예술가들이 프랑스와 미국의 추상주의를 수용하면서 이응노의 작품도 추상 표현기법을 가미해 새롭게 거듭납니다. 잡지에서 흑백으로만 보았던 서양 회화가 단순한 2차원 회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물질성과 질감을 탐구하며 콜라주 작업을 합니다. 

이능노는 1962년에 파리 파케티 화랑에서 콜라주 작품을 최초로 전시했습니다.  2전시실의 작품은 대부분 세르누쉬 미술관의 소장품입니다.




<3전시실-동양화가로서의 이응노>



이응노는 고암이라는 호를 사용하기 전에 죽사라는 호를 썼습니다. 대나무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응노미술관을 지을 때 전시실을 잇는 회랑의 한 벽을 유리로 처리하고 밖에 대나무를 심은 것도 이응노가 대나무를 좋아했던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그림의 대나무가 죽죽 뻗어있는 왼편 회랑의 창으로 푸르른 대나무가 보입니다. 유리 너머의 세상은 엑스포시민공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전혀 낯 설지 않고 푸르기만 합니다.



 

관람객들이 회랑에서 보고 있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바로 이 전시 알림 포스터입니다. 1973년 9월에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인데, 한국 작가가 두 명 있습니다. 왼쪽 아래 연두색 동그라미 속의 작가가 이응노, 노란색 동그라미 속의 작가가 문신입니다.


이응노미술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엑스포시민공원



<4전시실-공인예술가 정치적 반체제 인사> 


1967년, 이응노는 프랑스 국립제작소와 공동 작업을 하며 도불 7년 만에 일류 예술가로 인정을 받는 좋은 일도 있었고, 남한 정부로부터는 북한 간첩과 연관지어 체포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일생의 전환기이자 작품의 전환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밥풀을 뭉쳐 조각 작품을 하는 등 독특한 예술 세계를 펼쳤고, 1969년에 프랑스로 돌아간 이후 모국에서는 작품을 전시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타국인 프랑스에서 성공적인 이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3전시실에서 관람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작품은 바로 위 사진속 작품으로, 파리의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퐁피두 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응노 화백의 작품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시면 왜 관람객이 오래 머무는지 이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1978년 작품인데 이응노 화백은 당시 한국의 현실에 엄청난 분노와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 것 같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니 故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간접 선거를 통해 9대 대통령에 선출된 해이고, 고려대생 3천명이 <1978민중선언>을 발표했고 경북대생 2백여 명이 <구국 선언>을 발표하며 유신철폐 등을 주장한 해입니다. 

이응노 화백은 고국에서 들려오는 안카까운 소식을 듣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 그림에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붉은 색의 굵은 라인이 굴곡져 흐르는데 그 안에 작가의 심경이 한글로 담겨 있는 모습은 뜨겁게 흐르는 혈관과 그의 마음 같습니다.

(윗줄 오른쪽부터)".. 독재는 반민족, 반민주, 반인류주의다. 일.미 침약주의 축출하고 조국통일 민족경제 건설하자 (아랫줄 오른쪽부터)유신독재타도 민주민권 쟁치하자 외세배격 민족단결 평화통일 이룩하자" (그림에 있는 그대로)

퐁피두 소장품인 만큼 이 전시가 끝나면 프랑스로 돌아갈테니 다시 만나기 힘든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전시에서 충분히 감상해보세요. 

 


<5전시실-고국을 향한 마음>


이응노는 1980년 광주항쟁 소식을 듣고 군상 시리즈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품의 타이틀이 단순히 'Peopl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군상'과 '사람들'은 단어가 품는 뜻이 엄청 다르게 느껴지는데, 번역의 한계인지 좀 아쉽습니다. 군상 옆으로는 군상이 모여 만든 '反戰 平和' 글씨 그림도 있습니다. 




개막식에는 이응노미술관 로비가 북적댈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이응노, 낯선 귀향' 전시를 축하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 500원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죠?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어디 소장품인지도 살펴 보시고 대전교도소에서 만든 작품도 찾아보세요. 도슨트 설명은 매일 3회(11:00, 14:30, 16:30) 있습니다. 

월요일은 휴관이고 화요일부터 일요일, 10~19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오후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는데요. 이응노 톡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오후 8~9시까지 커피와 쿠키를 먹으며 학예사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특히 권해드립니다.     


이응노, 낯선 귀향 2018.7.13~9.30

입장료 어른 기준 500원/ 10~19시 관람(월요일 휴관) 

도슨트 설명 매일 3회 11:0014:30, 16:30


이응노 톡 매주 수요일 20-21시 

커피, 쿠키 제공 / 학예사의 전시 설명

신청 문의  042-611-9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