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박물관에서 한국의 명가 세 번째 특별기획전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한 성(姓)씨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는데요. 2015년 첫번째는 광산김씨였고, 2016년 두 번째는 안동권씨였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기획인데, 조선시대 대전의 명가이기도 한 은진송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이의를 제기할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한국의 명가'라고 하기보다 '조선의 명가'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전시립박물관이 어딘지 아시나요? 보통 대전역사박물관과 대전시립박물관 두가지로 불러서 혼동을 주었는데, 이번에 완전히 대전시립박물관으로 확정되었답니다.
이제부터는 대전시립박물관으로 불러주세요.
산림지덕-학덕으로 나라의 부름을 받다-바탕그린은 화양구곡
징소-산림지문(대전시립박물관 한국의명가 은진송씨 특별기획전)
이번 은진송씨 기획전의 주제가 좀 어렵습니다. 『징소((徵召)』산림지문-학덕으로 나라의부름을 받다.
나라에서 일을 맡기려고 불러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를 많이 했는데 과거를 보지 않고 향촌에 은거하는데 학덕이 높아 다른 사람의 추앙을 받는 사람을 '산림(山林)'이라고 한답니다.
조선시대 인조 대부터 산림이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직을 받고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하는데, 예학에 조예가 깊어서 국가의 명분과 논리를 제공하며 정치 당국을 주도하기도 했답니다.
은진 송씨는 산림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집안이라고 하는데 주로 율곡 이이나 사계 김장생에서 이어지는 학문계통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 중의 하나는, 혹시 학덕이 높다는 이유로 양반 집단에 일종의 특혜를 준것이 아닌가 의문도 듭니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1592)을 중심으로 사회가 요동치며 크게 변화했습니다. 16세기 이후 성리학은 이론적으로 심화되며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양대산맥으로 발전했습니다.
기호학파는 경기,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한밭 지역에서는 조선 전기 박팽년, 김정이 나왔고, 율곡 이이(1536-1584)의 학문을 이은 사계 김장생(1548-1631)과 그의 제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 우암 송시열(1607-1689) 등이 조선 후기 사림의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호서학파는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상을 주도하며 조선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향촌에 살며 서원과 향교에서 학문과 교육에 힘쓰고 향촌 자치를 위한 향약 보급, 사설의료시설인 의국을 설치하고 의약서를 편찬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만 했으면 오점을 남기지 않았을테니 사화등의 문제도 있었으니 역사를 돌아볼 때 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은진송씨 가문은 대대로 학문을 쌓고 덕행을 닦아온 가문이어서 '문행의 가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문집도 많이 냈고 저술 활동도 많이 하며 가문의 학문적 위상을 높였다고 합니다.
대덕구와 동구에는 지금도 동춘당, 호연재 김씨 고택, 계족산 입구의 비래사, 남간정사, 쌍청당 등 은진송씨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항상 무너진 역사는 아쉽지만, 대충 미루어 짐작해도 이 일대가 은진송씨 집성촌으로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 못지않는 힌옥촌이었을 것 같습니다.
머리속으로 상상해봐도 계족산 아래 기품있는 한옥마을이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띄엄띄엄 한 채 씩만 남아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지배체제가 불안해지고 사회적인 혼란을 겪자 예(禮)로써 질서를 회복하려고 예학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깐~! 임진왜란 이전에는 딸과 아들이 재산 분배나 권리에서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았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딸과 여성의 지위가 많이 떨어지고 불평등이 깊어졌지요. 거의 4백년 동안 여성을 억압하다가 이제야 좀 한숨 돌리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으니 억압의 뿌리가 참 깊기도 합니다. 이런 마이너스적인 질서도 그때 형성되었겠군요.
1809년에 계서 이형보(1791-1851)가 그린 화양구곡도입니다. 화면 상단에 송시열의 10대손인 송낙헌(1889-1943)이 쓴 글씨가 있습니다.
화양구곡은 충청북도 괴산에 있는 화양동계곡인데, 효종 때 송시열이 이곳에 와서 살면서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붙인 이름입니다. 화양동계곡을 따라 입구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멋진 바위가 있고 경치가 좋은 곳에 1곡부터 9곡까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것을 그림에 담은 것이 화양구곡도입니다.
전시장 앞의 벽면에 넣은 대형 그림도 화양구곡도입니다.
동구 이사동에는 은진송씨 문중에서 500여 년간 형성한 문중 묘역이 있습니다. 1000기가 넘는 문중의 집단묘역인데, 한반도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대형 문중묘역으로는 거의 유일한 곳이고요. 재실도 여러 곳 있으며 제례문화도 잘 남아있습니다.
2013년 무렵 이사동 묘역을 처음 가보곤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답사를 많이 다녀봤는데 그런 곳은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국가문화재,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 유산을 좀더 세심하게 아끼고 보호하면 좋겠습니다.
대전시립박물관의 은진송씨 특별기획전의 내용은 국사를 좀 배운 어린이부터 관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화해설가가 상주하고 있으니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역사적인 내용을 관람할 때에는 적극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크리티컬 관람을 하면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자녀와 깊이있는 대화를 하려면 부모의 공부하는 자세도 필수입니다~^^
석양을 받고 있는 대전시립박물관의 옆면
토요일 오후3시부터는 로비에서 대전음악제도 무료로 열리고 있으니 시간 잘 조절해서 음악회도 감상하시면 1석2조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