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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68년 된 국내 최장수 문학동인 ‘호서문학회’

 

대전 문학계에는 전국 최장수 문학단체가 있다. 호서문학회. 최근 호서문학회의 창립시기가 기존 알려졌던 1951년보 최소 2 앞선 1949년임을 증명하는 새로운 자료가 나타 지역문학계가 술렁거렸다.



(왼쪽)호서문학회 광고가 실린 <호서학보>
 (오른쪽)호서문학회 행사 모습

 

 

호서문학회 2년의 의미는 단순히 오래된 문학단체의 활동시기 연장이 아니다그 시간은 해방 후 힘든 여건에서발간된 <향토> <동백> 이후 호서문학이 탄생하기까지 4년이라는 지역문단의 공백기를 단축시킨다는 의미와 함께 지역 근현대 문학사 연구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제기 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호서문학회의 출발시기를 앞당기게 하는 자료는 아주 우연 발견됐다. 대전문학관은 상반기 기획전시로 호서문학 소개전여기와 거기, 기록의 ’(714일부터 1031 전시)을 준비하던 중 정훈선생이 학장으로 있던 호서민중대학 창 1주년 기념교지인 <호서학보> 빌려 받는다.


<호서학보> 1949년 발간된 책으로 세월의 흔적이 완연한 이 책의 115 쪽에는지역 문단사를 새롭게 쓰게 하는 광고 하나가 실려 있었다. 호서문학회를 알리는 것으로 짐작되는 광고로 상자 한자로 이렇게 쓰여 있다. ‘호서문학회 주소 대전시 원동 79, 전화 224’


대전 근대문학은 1945 10 창간한 <향토>로부터 출발한. 민족운동단체인 종랑도(宗郞徒) 회지였지만 주로 정훈, 원영한, 이교탁 문인들이 활동했다. 그후 <향토> 경비 문제로 아쉽게 2 발간에 그치고 만다. 이듬해인 1946 7월 박희선, 정훈, 박용래 3인의 작품이 실린 충청지방 최초의 순수 시문학지 <동백> 창간돼 1947 9 8집까지 이어오 종간 된다. 


그리고 호서문학이 창립한 1951년까지 대전에는 문학동인 활동이 전무했다. 시기적으로는 한국전쟁이라는 불행한 역사의 시간이기도 했다. 호서문학회는 1951 11월 5 구 대흥동 대전극장 뒤 희망다방에서 발기인 대회를 열고엿새 뒤인 11일 50여 명의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구동양백화 자리( 대전NC백화점) 있던 미국공보원 강당에서 립행사를 개최했다.


<호서문학> 창간호는 다음해인 1952 8월 1일 발행 됐다그해 7월 임희재와 원영한 두 사람이 옛대전극장 허름한 가건물 인쇄소에서 활자를 주워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달이나 뒤에야 천주교 오기선 신부님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올 있었다고 전해진


창간호에는 정훈, 한성기, 임강빈 기라성 같은 지역 문인들과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 권선근의 소설과 지헌영의 에세이 등이 실렸다. 



호서문학회 출범의 주역 정훈 시인의 생전 모습(오른쪽)



<호서문학> 창간사에서 시인 정훈은 이렇게 밝힌다. ‘우리는 비상한 각오로서 신념과 의욕과 정열과 자부를 잃지 말고 굳게 싸워가는 동안 맨주먹으로도 적막한 조국문단에 사스런 꽃을 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된 전쟁 후의 현실 속에서 지역문학으로 희망의 등대를 삼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비장하다. 시대 대전 문학의 힘이 느껴진다.


그후 <호서문학> 1959 4집을 한참 만인 1976 5집과 6집을 연달아 내며 끊어졌던 맥을 이었다. 1981년부터는 해를 거르지 않고 문학지를 내다가 2001년부터는 한해 두 차례씩 발간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호서문학회 원은 200 . 편집위원장으로 소설가 김수남 씨가 역할을 맡고 있고 송영숙 시인(호서문학회장), 이진우 소설가, 홍순 시인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 송영숙 회장은호서문학 정신은 순수 문학 지향이라고 강조하면서 높은 <서문학> 만들기 위해, 매회 치열하게 편집회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고집들이 전국최장수 동인으로 남아있는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한편 호서문학회는 11월 24() 오후 6 기독교봉사회관에 60 발간기념 호서문학상과 신인상 수상식을 개최한 . 송영숙 회장 휴대폰 010-3417-4056 



<호서학보>,<호서문학>창간호


 

<호서학보> 발견은 아주 뜻밖의 장소에서 이뤄졌다. 지역 문단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훈 선생의 자제인 정병선 씨로부터 <호서학> 존재를 들었으나 물증은 없었다. 씨가 갖고 있던 <호서학>는 지역의 중견 문인인 L씨가 빌려가 주인인 정 씨가 갖고있지 않던 터였다.


그러던 박헌오 대전문학관장의 누이동생이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보따리 안에서 권의 <호서학보> 발견한다. 책을 통해 호서문학회의 출발시기가 2 앞섰음이 혀지면서 소유의 <호서학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씨는 L씨에게 분명 원본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L씨가 복제본이었음을 주장하면서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씨로부터 기증을 약속받은 대전문학관은 지역의 귀중한 문학 자료인 <호서학보>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호서문학> 창간호는 세상에 권이 남아 있다. 권은 서울대 도서관에또 한 권은 충남대 도서관에 있다충대도서관의 <서문학> 창간호도 향토사학자 김영한 씨가 도서관에 기증한 따리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그나마 창간호가 보존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문제는 호서문학 2집이다. 1954 2 발간된 호서문학 2집은 그동안 지역문단에서 눈에 을 켜고 찾아 왔지만 아직 무소식이다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 중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대전문학관으로 연락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대전문학관626-5021 








위 콘텐츠는 월간이츠대전 2017.11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