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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 김관식, 3대째 전통 계승한 사연

안녕하세요? 타는 듯한 더위가 언제쯤이나 끝이 날까 했는데, 하룻밤 새 내린 비 한 번으로 물러났습니다. 역시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해도 하늘이 하는 일은 감히 인간이 어찌하지 못합니다.

며칠 사이에 하늘이 더 높고 맑고 푸르러진 지난 토요일, 저와 막내는 초등학생 가족이 함께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시는 한밭문화마당 선생님들이 꾸리는 '보이지 않는 문화재에 날개를 달다' 프로그램을 신청했답니다.

에는 '반갑다! 무형문화재'라는 주제로 대전의 무형문화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었고요. 둘째주는 '악기장 김관식 선생님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김관식 악기장님께서는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이십니다. 나무통에 가죽을 입히는 작업을 '북 메우기'라 하는데, 대전전통나래관에 가면 악기장님의 작품과 사진을 볼 수 있답니다. 또 대전역 뒤에 있는 공방 '대한민국 국악사'에 들르면 악기장님께서 작업하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다네요.

[출처:대전전통나래관] 종묘제례악에 쓰이는 '진고'입니다.[출처:대전전통나래관] 종묘제례악에 쓰이는 '진고'입니다. 호랑이가 살아나올 듯 합니다!


김관식 악기장님의 할아버님께서는 젓갈로 유명한 충남 강경에서 북을 만들기 시작하셨답니다. 그리고 2대인 아버님께서 대전으로 건너오셔서 어머님과 함께 공방을 운영하셨다지요. 그래서 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일곱 살때부터 악기를 만들었다시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배웠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지요. 허허."

그리고 열 두 살때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북을 만들거야!'라고 다짐하셨답니다. 아! 그 어린 나이에 평생의 목표를 세우셨다니 정말 뭉클했습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대를 이어 3대째 악기장으로서 평생을 일해오셨다는데,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으셨냐고 여쭤보니 십대 때 가장 힘드셨대요. 저도 그러했고 제 아이도 그러듯 사춘기가 가장 힘든 때이지요.

당시에는 양복점과 양장점들이 많이 생겼을 때라, 열 네 살때 양복점에서 3일 동안 단추를 달아봤었노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짧은 방황을 거친 악기장님께서는 할아버님과 아버님을 이어 3대째 우리 전통 북을 만들고 계신 '인간문화재'이십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인간문화재라는 낱말이 더 많이 쓰인 것 같은데요, 악기장님 말씀이 행정상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로 나눠지는 것이라서 '인간문화재'와 '무형문화재'는 같은 뜻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아드님께서 잇고 계시고, 따님께서는 북에 멋드러진 그림을 그리는 단청 작업을 하신답니다.

 

 

당연히 악기장님 뒤에는 살갑게 내조해 주시는 사모님이 계시고요. 와~ 정말 대단한 전통문화계승 가족이시기에 모두들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평생에 걸친 악기장님의 이야기를 재밌게 듣고 난 후, 아이들과 진짜 소가죽으로 소고를 만들었답니다. 우리가 흔히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소고는 울림통까지 100% 플라스틱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꿈다락문화학교 덕분에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지요.

 

공방에서 밑작업해 주신 미완성 소고를 받아보니, 울림통의 위 아래에서 마주보도록 소가죽 2장이 붙어있었습니다. 이 위와 아래의 소가죽에는 송곳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서 아이들은 굵은 끈으로 엮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작업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 아이들이 잘 하고 있나 하나하나 봐 주시던 악기장님의 날까로운 눈에 띄면 가차없이 다 풀려서 처음부터 다시 엮여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체험거리라고 그냥 무난하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게 꼼꼼히 봐 주시는 모습에서 '장인'의 진면모를 엿보았지요.

 

 

사진에 제대로 담지 못했는데, 악기장님의 손은 오랜 세월의 훈장인 듯 물집과 굳은살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날의 소가죽은 부드럽고 촉촉했습니다.

이렇게 촉촉해야 울림통을 감싸는 작업을 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마른다고 하셨는데, 정말 집에 돌아오니 맑은 소리가 통통 났습니다.

저도 이날에서야 알았는데, 악기장님의 작품을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봐 왔답니다. 1988년 여름, 우리 가슴을 뛰게 했던 서울올림필 개회식을 기억하시나요?

 

[출처 : 대전전통나래관] 2015년의 기획전 포스터입니다.[출처 : 대전전통나래관] 2015년의 기획전 포스터입니다. 포스터의 용고가 바로 악기장님의 작품입니다.

 

'성화 점화'와 '굴렁쇠 소년의 등장'과 함께 그 날의 3대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용고 행렬'의 그 큰 북이 바로 악기장님의 작품이랍니다.

바덴바덴에서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이 'SEOUL!'이라고 발표하는 뉴스를 보시고, '바로 이거야!' 하셨답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바로 작업을 시작하셨대요.

왕을 상징하는 용의 그림이 새겨져 '용고'라고 불리는 이 북은 무게만 480㎏으로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큰 북으로 세계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합니다. 열 두 살 소년의 꿈이 비로소 이루어진 순간이지요.

2년 여에 걸쳐 만든 이 용고를 대전에서 서울까지 옮기는 데만도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안타깝고 서운했던 이야기도 풀어내셨습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올림픽 이후로 작은 감사 인사조차 나라로부터 받지 못하셨대요.

그러다 조선일보에 서울올림픽을 회고하는 기고를 쓰던 박세직 조직위원장의 발견으로 작은 표창을 뒤늦게 받으셨다고 합니다. 청와대 춘추관에도, 파주의 통일전망대에도 악기장님의 용고가 있다고 합니다. 한남대학교에 있는 용고까지 위 3개의 작품은 서울올림픽의 용고와 같은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형제들이지요.

다음에 청와대 브리핑을 뉴스에서 볼 때는 용고도 꼭 확인해야겠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고 사랑하나 봅니다.

 

 

한땀 한땀 아이들이 열심히 만든 소고에 친히 이름을 남겨주시는 김관식 악기장님!

 

 

대전을 비롯하여 우리의 귀하고 소중한 전통문화에 더 많은 관심과 자부심을 갖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 대전공연전시 블로그] 악기장 김관식 선생님을 소개합니다.[출처 : 대전공연전시 블로그] 악기장 김관식 선생님의 약력을 소개합니다. 이름만 봐도 우리에게 낯익은 작품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