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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전시ㆍ강연

KAIST시민인문강좌, 타고르가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표현한 까닭은?

 

대전시에서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도시 규모에 비하여 인문학 강좌가 많이 열립니다.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민대학, 각 구마다 있는 도서관, 그리고 서람이 자치대학처럼 구에서 직접 개설하는 인문학 강좌도 있고 여러 대학에서도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무료 강좌가 열립니다.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에서도 매년 2~3회로 시민인문강좌가 개설되는데요. 매 회마다 다양하고 깊이있는 주제와 내용으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대중 강연의 수준을 보면 그 도시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지요.  


 


올해 3월 말에서 4월 말에 있었던 제14회 시민인문강좌는 '철자법의 수수께끼'를 주제로 오늘날의 한글이 형성되기 까지 치열했던 철자법 논쟁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고요.

우리가 매일 너무나 익숙하게 쓰는 한글이라 무슨 특별한게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래로 지금의 맞춤법이 완성되기 까지 한글학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맞춤법 논쟁을 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가 되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강좌의 구성은 아래 내용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재 열리고 있는 제15회 카이스트 시민인문강좌의 주제는 '세계문학산책'입니다.

지난 주에 열린 4강에서는, 1강에서 '세계문학을 읽는 두 시선'이란 주제로 강의를 한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타고르, 아시아의 등불'이란 주제로 강의하였습니다.

타고르는 일제 강점기의 한반도를 '동방의 등불'로 묘사하여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고 익숙하고 입에 오르내리는 인도의 문학지성인데요, 일찌감치 1912년에 쓴 시 '기탄잘리'로 191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먼저 타고르가 한반도의 조선사람에게 써 준 글을 볼까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당시 신문에 실린 맞춤법대로 보겠습니다.

'일즉이亞細亞의 黃金時期에 빗나든燈燭의 하나인朝鮮 
그燈불한번다시 켜지는날에 너는東方의밝은 비치되리라. (후략)'

타고르는 당시 일본에 3번이나 왔는데 조선에는 한번도 오지 않았답니다. 3번째로 방문했던 1929년 당시 동아일보 기자가 일본에서 타고르를 만나 조선 방문을 요청하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기며 이 시를 써주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것은 詩라기 보다는 덕담에 가깝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는 말에 감동하여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요. 당시 타고르는 서양문명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면서 서양문명을 대신할 만한 것은 아시아라고 생각했다는군요. 방문하던 아시아의 나라마다 모두 '등불'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타고르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를 '빛나는 등불'로 묘사해서가 아니라 다른 점이랍니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의 시는 한시에서 현대시로 바뀌던 시기였는데, 한국 현대시의 길을 보여준 사람이 타고르라고 합니다. 타고르의 영향을 깊게 받은 시인은 정지용, 김소월, 한용운입니다.

그들은 한시 창작은 가능했지만 새로운 시는 잘 몰랐는데, 일본시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여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정지용과 김소월은 영어로 된 타고르 시를 번역하며 공부하고, 한용운은 일본어 번역본으로 공부했는데, 타고르에 대한 가장 이해가 높은 시인은 한용운이라고 합니다.

당시 한용운은 불교로 서구 근대화를 넘어서는 것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고르가 좋은 모델이 되었다는군요. 1925년에 쓴 '님의 침묵'에 타고르에게 바치는 詩를 쓸 정도로 심취하였는데, '님의 침묵'은 시에 담긴 사상과 형식이 거의 타고르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타고르의 중요한 점 또 하나는 세계문학론(1907년)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가끔 TV홈쇼핑에서 세계문학전집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런 세계문학을 전집으로 판매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뿐이라지요.

사실 세계문학을 처음 말한 사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의 괴테로, 거의 200년 전인 1827년에 그런 말을 했다는군요. 당시 괴테는 중국소설을 접하고 유럽을 벗어나 시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해서 다른 민족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권하면서 세계문학(world literature)이 도래함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1800년대 말(19세기 말) 유럽은 산업화 확장으로 박람회를 하며 자신들의 위용을 과시하던 시대였는데요. 유럽의 지성인들은 지나친 제국주의 노략질과 팽창주의를 부끄러워하는 가운데 유럽 문학이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 때 타고르는 유럽인들이 누구나 인정하는 괴테를 인용하면서 세계문학론을 주장하였다는군요.

  


1840년 경, 영국이 곳곳에 식민지를 가지고 국제적인 우월감에 빠진 시기에 "인도의 무굴제국은 사라져도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의미의 말을 했는데, 이 말이 잘못 번역되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로 잘못 알려졌다는군요!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후, 영국을 문명국으로 내세우기 위하여 셰익스피어를 강조하였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타고르는 셰익스피어가 1611년에 쓴 희곡 '템피스트'와 4~5세기 고대 인도의 시인인 칼리다사의 운문음악극인 '칼리다사'를 비교하며 비판을 하였다는군요. 타고르는, 괴테가 칼리다사를 읽고 "여기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있다"라는 시를 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콧대 높은 유럽이 인정하는 괴테를 인용하며 설득력있는 비판을 하였다고 합니다. 역시 이런 면에서도 지피지기해야 백전백승인가 봅니다.


중국 소설과 인도 고대 희곡까지 폭 넓은 독서로 자신의 시각의 넓이와 깊이를 키운 괴테도 참 대단하군요. 위 사진의 서동 시집은 페르시아(1935년까지 서구에서 이란을 부르던 말) 시인의 시를 읽고 감동받아서 "동에는 네가 대표, 서에는 내가 대표"라는 식으로 쓴 화답시랍니다.



위 사진 속 두 그림에는 유럽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왼쪽에 책으로 둘러쌓인 중국 학자의 모습은 17세기인 1680년 대에 '중국은 책의 나라, 철학자의 나라이고 우리 유럽은 무식'하다는 인식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반면 오른쪽은 청나라 사람이 유럽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그린 19세기 초중반(1840년 경)의 그림입니다. 당시 기술 산업화에 성공한 유럽이 스스로 세계 제일이라고 인식하면서 중국에 대한 자격지심을 극복함을 나타낸 그림이겠네요.

이런 역사 문화적인 배경을 갖고 있으니 현재 중국의 급부상도 서방 세계에서는 어떤 두려운 시각으로 바라볼 지 상상이 됩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인 볼테르가 쓴 '중국 고아'라는 글인데,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문화 수준이 높은 중국을 선망하는 분위기에서 상대적으로 낙후한 유럽에 대해 쓴 글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럽이 중국을 부러워하며 바라보는 시선이 잘 나타나있죠? 

기술 산업이 유럽에서 성공하면서 세계가 요동치며 뒤바뀐지 200년 남짓한데, 과거와는 상상도 못하게 변화가 빨라진 지금 세상에 앞으로는 또 어떤 혁명적인 세상이 우리에게 펼쳐질까요? 이렇게 LTE급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시각으로 어떤 교육을 받아야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까요? 

대전에서 펼쳐지는 시민인문학의 세계는 이처럼 깊이와 폭이 상당합니다.^^

매 학기마다 주제를 달리하여 진행되는 카이스트 시민인문강좌 소식은 아래의 주소에서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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