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청앞 보라매공원_"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대전시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평화의 소녀상"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국민이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과 함께 독립만세 운동이 재현되는 3.1절은
독립만세운동을 통해 선열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날임과 동시에 광복 70주년을 맞은 날입니다.
올해 96주년을 맞은 3.1절은 민족자존의 가치를 드높이고,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는 날로 청양의 해에 맞이한 대전광역시의 3.1절은 아주 특별났습니다.
대전의 신도심 중앙부 시청앞 보라매 근린공원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민.관.공동협력사업으로 추진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대전광역시의 지원과 시민 2,377명이 모금운동에 동참해
인권 존중과 평화를 실천하는 바램을 담아 3.1절을 기념하여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른아침 꽃샘추위와 함께 살짝 춘우가 내렸던 날. 햇살이 들락날락 했던 오후 2시.
둔산 신시가지 대전시청앞 보라매 근린공원 주변에는 정오가 지나자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전광역시와 대전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주관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은 국악앙상블팀의 잔잔하게 흐르는 연주로 시작되었습니다.
드뎌^^ 대형 태극기를 들고 나온 대전CMB 어린이 합창단원들의 노래로 제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의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가 변덕심한 날씨를 대신해 기분을 살짝 UP 시켜 주었습니다.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잠시 침묵히 흐른 후, 대전광역시 권선택 시장님께서 할머니 한 분을 휠체어에 태우시고 천천히 나오셨습니다.
바로 이분이 일제강점기때 모진 수난과 고통을 겪으셨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 복동 할머니십니다.
뒤이어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따라 나오셨습니다. 당시의 피해자셨던 김 원옥 할머니셨습니다.
두 분의 할머님들이 자리에 앉으시자마자 취재진들이 몰려와 정중한 인사와 함께 카메라 셔터가 쉴새없이 찰칵거립니다.
대전의 방송사들과 신문사 등등 중앙에서도 취재진들이 두 분의 할머님들 앞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이어 곧바로 개회가 선언되고 순국선열의 묵념과 애국가 제창, 그리고 내. 외빈소개가 계셨는데.
변덕심한 날씨에도 정말 많으신 분들이 참여를 해 주셨어요.
양무석 (사)대전흥사단 대표님의 경과보고와, 8.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상임 대표이신
김 용우님의 대회사에 이어 대전광역시장 권선택 시장님과 대전광역시의회 의장이신
김인식 의장님, 박범계 국회의원, 장종태 서구청장의 기념사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주변이 가슴 아픈 민족사의 고통을 배우고
대전과 민족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민민주주의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이날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대전 시청앞 보라매공원 사방으로 가득가득 찼습니다.
당시 위안부들의 나이와 같음직한 어린 중학생들도 정말 많이 눈에 띄었는데,
모두 한손에는 조그만 태극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모 중학교 여학생들에게 인터뷰가 쏟아 집니다.
오늘 이 제막식에 왜 참석 했는지를 물어 봅니다.
곧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일본군 노예처럼 지내다 70년 전 우리나라가 해방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우리는 해방이 되지 않았다"며 " 국민이 화합해서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옴을 느꼈습니다.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이어 흰색 천으로 덮여 있던 평화의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정말 많은 시민들이 이곳 "평화의 소녀상"을 만나 보기위해 가까이 몰려 들었습니다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흰색천이 걷혀지자 "평화의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반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평화의 소녀상을 만지고, 또 만지고...
소녀상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꽃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실제 김 할머니가 당시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의
나이는 고작 14살에 불과했고 그는 소녀상을 보면 그때 당시 자신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제막식이 끝난 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들께 각 방송사의 인터뷰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김복동(90) 할머니는 “우리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당시 잘못된 한·일조약으로 풀지 못하는
우리의 한(恨)을 따님이 대통령이 됐으니 해결하길 바란다. 또 남북이 통일돼 전쟁 없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어 자손들이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제막식에 참석하신 많은 내.외빈들께서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셨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끝나고도 기념공연과 헌시낭송 및 헌무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양말도 신지않은 맨발로 헌무를 추며 천천히 평화의 소녀상앞에 다가가 따스한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자신들의 모습과도 같은 "평화의 소녀상"을 만나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들께서는
다시 자리에 앉으셔서 계속 진행되는 기념공연을 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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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합창단의 합창이 이어지고 만세삼창을 마지막으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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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역사가 평화와 인권의 메아리가 되어 멀리 멀리까지 퍼져나갔음 하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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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프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우리의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도한 이곳에서 대전광역시와 서구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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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평화의 소녀상 제막을 기념하는 평화 행사를 열기로 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조형물입니다. 소녀상 뒤편에는 건립에 동참한
추진위원회 시민위원 2,300여명과 참여 단체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단발머리 소녀가 앉아 있는 형태인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의 작품입니다.
아직은 썰렁한 보라매공원이지만, 아름답기로 소문난 시청앞 가로수 숲길 입구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은 이제 곧 새봄과 함꼐 돋아나는 붉은 영산홍, 여름이면 시원한 숲 속 그늘,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 겨울이면 하얀 눈과 함께 찾아드는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결코 외롭지 않을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평화의 소녀상"의 의미
단발머리의 소녀가 앉아있는 형상의 "평화의 소녀상"에는 많은 숨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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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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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와 뜯겨진 머리카락>
당시 조선 소녀의 머리카락은 댕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분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자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각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머리카락이 거칠게 뜯겨진 듯 잘려진 모습입니다.
이는 낳아주신 부모와 내가 자란 고향을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강제로 고향·부모와
단절된 모습을 표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평화의 소녀상의 꼭 말아 쥔 주먹>
일본 정부의 행태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꼭 쥔 두 손은 사과는커녕 한국 역사를 왜곡하고 정부를 압박하며 소녀상 건립에 반대하고,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작태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고 합니다.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평화의 소녀상 어깨 위의 새>
새의 의미는 보통 자유와 평화를 상징합니다. 또 하늘을 날아 다니다다 땅에 앉기도 하는 새는
산 사람과 돌아가신 사람을 영적으로 연결해주는 영매의 의미를 가지고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돌아가시긴 했지만, 마음만은 현실에 있는 할머님들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땅에 닫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
소녀의 발은 맨발입니다. 소녀의 맨발은 전쟁이 끝났지만 많은 소녀들은 돌아오지 못하였고
또 간신히 이 땅에 돌아와서도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아픔을 맨발로 땅에 붙이지도 못한 채, 발뒤꿈치를 든 모습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사진제공 : 대전광역시>
<평화의 소녀상의 그림자와 흰나비, 그리고 빈 의자>
소녀지만 그림자는 할머니로 현재의 할머님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슴에는 하얀 나비가 있습니다.
보통 나비는 환생을 뜻합니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평화를 염원 하시던 할머님께서 하얀 나비로 환생하셔서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요.
빈 의자는 첫 번째는 세상을 먼저 떠나가신 할머님들의 빈 자리이고, 두 번째로는 소녀상 조각 옆의 빈 의자에
나란히 같이 앉아 그 당시 어릴 적의 소녀의 심정을 생각해 보고
현재의 할머님들의 외침을 함께 느껴 볼 수 있게 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를 함께 풀어나갈 미래 세대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평화의 소녀상"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위안부 할머님들.
대전의 한가운데에서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평화의 소녀상"
큰 상처를 입은 그들의 상처를 우리가 위로해 주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