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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장터ㆍ골목길

호떡과 함께 돌아보는 대전여행 2탄

 



호떡과 함께 돌아보는 대전여행 2탄

2015.1.16  (9:30am~3pm)


 

 

지난 12월에 대전문화유산 울림(대표 안여종)의 기획으로 진행되었던 대전호떡여행1탄에 이어

참석하지 못한 많은 분들의 요청으로 대전호떡 여행 2탄이 계획되었는데요,

선착순 10명 접수 문자가 뜨자마자 번개같이 골인하여

대전호떡여행 2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ㅎㅎ

여행에는  자연을 감상하는 여행, 역사여행, 문화유적여행, 식도락여행, 사람사는 모습을 느끼는 인문여행 등이 있다고 할 때,

이 호떡 여행은 자연감상 여행을 뺀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전호떡여행 2탄은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과 어머니들이 대거 신청하여

접수가 순간 마감되었다고 합니다~^^

겨우 선착순 10명인데 그 안에 들었다는 짜릿한 성취감~ㅋ

오전 9시30분에 한밭수목원 표지석 앞을 출발하여

대전시청 북문에서 또 일행을 태우고

첫번 째 코스로 탄방동 남선공원에 있는 망이 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으로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려시대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의 대전은 당시 공주에 속해있었는데,

당시 소규모 지역을 향, 소, 부곡으로 설정하고 특산물을 생산하게 하였습니다.

국가와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내는 곳을 '소'라고 하여

경제적 부담을 안기면서도 신분적으로는 천민처럼 차별을 하였는데,

망이, 망소이 형제가 속했던 곳이 대전의 현 탄방동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명학소였습니다.

 

 

 

 

1160년 부터 최씨 무신정권이 고려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사회적 개혁을 하기보다 오히려 심한 수탈을 하자

농민과 하층민도 전통적인 신분에 도전을 하면서 '나도 한번 해보자' 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1259년 최씨무신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 전국에 걸쳐 거의 매년 난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려 말 무신정권 아래의 난은 조선시대 말의 어지러운 상황과는 달리

배고파서 일으켰다기 보다는 계급적 항쟁의 특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망이, 망소이의 난도 그 무렵 1176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난을 일으키는 명학소 사람들의 모습을 세워놓은 동상에서 맘에 들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단 위에 올라 죽창을 들고 함성을 외치는 사람들은 짚신을 신은 것으로 표현해놓고

단 아래 탑의 정면 중앙 좌우로 서있는 망이와 망소이는 갖신을 신고 있습니다.

망이와 망소이도 역시 같은 천민인데 그들이 주동이 되어 난을 일으켰다고해서

그들이 마치 무슨 장군 계급이라도 된 것처럼 칼을 들고 갖신을 신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스스로 '산행병마사'로 칭했다고 하니 칼을 들긴 했을텐데 갖신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금방이라도 함성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생생한 느낌입니다...

시대가 달라서 살아가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여도 

착취당하면 화나고 멸시당하면 떨쳐 일어나는 기본적인 사람의 성향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 같습니다.

이번 연말정산 하면서 분위기 많이 험악해졌잖아요...

지금이야 우리 손으로 직접 선거하여 다수 표를 얻은 정치인이 정치를 하지만

망이, 망소이가 살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차별의 시대에

저런 어마무시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자체부터가 더 놀랍습니다. 

당시로 보자면 실로 대단히 혁명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면 신분차별의 시대에도 이런 주인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위급해지면 백성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스스로 의병, 독립군이 되어 외세와 싸웠나봅니다. 

이런 주인 의식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고 하니

우리의 조상에 대해 충분히 아니 충분 이상으로 자부심을 가질만 합니다~!

 

 

 

 

 

그 다음 코스로 탄방동 도산서원 옆의 탄옹 권시의 조선시대 묘를 보았는데, 

탄옹 권시의 묘를 관리하는 후손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탄옹 권시는 1661년 조선시대 예송논쟁에서 고산 윤선도를 비호하는 상소를 하다가 노론의 탄액을 받아

지금의 탄방동으로 내려와 서당을 짓고 강론하였고, 

1692년 숙종 때 권시의 서당이 있던 서당골에 도산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런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시 그 지역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역사박물관에 어떤 지역의 옛모습부터 현재까지 변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훨씬 더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할 것 같네요~

 

 

 

 

 

롯데백화점에서 수침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용문동 길 옆에 용문동 호떡집이 있습니다.

용문동에서만 자리를 조금씩 옮기면서 30년 동안 호떡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대전에 오기 전에 평택 아래 둔포에서 호떡을 팔 때에는 줄 서는 고객들이 많아서 경찰이 질서정리도 하였답니다~^^

말 그대로 '호떡집에 불났네'의 경우였네요~^^

2개에 1,000원인데, 찹쌀을 섞은 호떡이고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맛이 토실하고 쫄깃하며 담백하여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좋아하였습니다.  

찹쌀호떡, 찹찰호떡이라고도 하는데 2개 1,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은 또 금상첨화구요~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비래동 고인돌이었습니다.

이 옆을 통과하여 계족산으로 간 적도 여러 번 있는데... 이 곳에 고인돌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처음 알다니...

대전이 그리 넓은 것 같지않아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넓적한 고인돌이 2기가 있는데, 두 고인돌 모두 상단에 

성혈(性血: 풍년을 기원하거나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이미로 만든 구멍)이 선명하였습니다.

이 고인돌 아래에서는 비파형 동검 등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땅에 살았던 조상님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바위구멍을 뚫고

무거운 돌을 옮겨 고인돌을 만들었는지, 설명을 들으면서 눈을 감으면 영화처럼 보입니다.

비래동 고인돌 부근의 호떡집은 궂은 날씨에 장사를 쉬어서 맛보지 못하고, 

만인산의 유명한 봉이호떡의 분점이 있는 대전역사로 갔습니다. 

 

 

 

 

번듯한 매장이 있어서인지 가격이 두 배로군요...

일단 일반 꿀호떡이 1개에 1,000원인데, 너무 기름져서 모두들 느끼하다고 하였고,

대신 1,500원하는 야채호떡(보다는 '채소호떡'이라고 하면 좋겠어요.)은

다른 곳과는 차별되는 특색이 있었습니다.

 

 

 

 

 

대전역사를 지나와 중앙시장으로 명물 흑미찰호떡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흑미찰호떡이 제일 좋았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시면 호떡을 굽는 철판 위에 손잡이가 달린 작은 뚜껑들이 주욱 줄서있습니다.

바로 그 뚜껑 아래에서 호떡이 맛있게 익고 있었습니다.

흑미찰호떡 한개 700원, 세개에 2,000원입니다.

 

 

 

 

 

호떡과 더불어 바로 옆에 있는 김치만두, 고기만두도 함께 먹을 수 있는데요,

우리 일행은 이미 여러 곳을 거치면서 호떡을 먹고 온 참이라 상큼한 김치만두로 입가심을 할 수 있어서

흑미찰호떡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만두는 길이가 10cm 가 넘고 속이 꽉 찬 토실한 만두인데 2개에 1,000원입니다.

만일 만두 2개, 흑미찰호떡 1개 먹고 얼큰하고 시원뜨끈한 어묵 국물과 함께 먹는다면

1,700원에 한 끼 식사가 가능할 정도입니다~!

 

 

 

 

기름기 없이 잘 달구어진 뜨거운 판 위에서 흑미찰호떡은 뚜껑으로 열기와 습기가 차단되어

굽듯 찌듯 만들어지는 특징이 있어서 통통하고 맛이 훨씬 담백하네요~~

 

 

 

 

 

중앙시장의 흑미찰호떡을 만끽하고는 다음 호떡을 맛보러 부사동 시장으로 가는 길에

도로 옆에 있는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외관을 잠시 볼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의 문자을 착취하여 가져가는 역할을 담당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건물은

당시 물자를 착취할 만한 곳이면 곳곳에 세워져있었지요. 

그런데 다른 도시에 비해 대전의 이건물은 유난히 버려져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좋은 역할을 한 곳이 아닐지라도 이 자리는 흑역사의 한 장면으로 충분히 교훈을 주는 곳인데 말이죠.

 

 

 

 

 

 

부사동시장 할머니호떡은 시장 입구의 농협 골목 옆에 있었습니다.

작은 가게였는데, 할머니가 호떡을 굽고 할아버지가 보조를 하면서

보기좋게 사이좋게 협조를 하고 계셨습니다.

 

 

 

 

 

기름기는 좀 있긴 하지만, 달콤한 설탕이 안에서 녹아 흐르는 것이 아니라

호떡 속으로 함께 스며들면서 얇고 바삭하게 굽기 때문에

아이들이 먹기에는 뜨거운 시럽이 흐르지 않고 파삭하여 훨씬 맛있고 좋았습니다.

 

 

 

 

 호떡 맛을 본 평가를 각자 해보았는데요, 위에서부터 호떡을 맛보면서 느꼈던 거의 그대로

판정이 난 것 같습니다. 물론 맛과 위생과 값까지 모두 고려한 솔직한 평가입니다.

이 호떡 여행에 참가한 어린이들이나 엄마들이나 중앙시장을 처음 온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이런 프로그램을 계기로 맛보고 즐긴 중앙시장은 대형마트의 밋밋한 음식코너와는 확연하게 다른

시장 구경의 재미가 있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곳이었습니다.

이 여행에 대한 요청이 밀려서 한차례 더 진행하신다고 하는군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대전문화유산 울림]의 다음카페 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djchwoollim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01.30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용문동 찹쌀 호떡이 제일 이군요. 실감나는 이야기 글이 넘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호떡 여행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