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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산(山)ㆍ천(川)

성북동 용바위, 계룡산 용이 나온 곳

 




성북동 용바위, 계룡산 용이 나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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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울림유산에서 진행하는 새벽여행 프로그램을 따라가다 보면

대전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하며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소박하지만 멋지고 조용한 여행지가 참 맘에 들어서

올빼미 체질이라 새벽 기상이 쥐약인데도 불구하고

2시간을 자고 일어나더라도 대전 새벽여행은 꼭 동참하게 됩니다.

 

 

 

 지난 7월 중순에 새벽여행으로 떠난 곳은

유성구 성북동이었습니다.

길상사와 간송미술관이 있는 서울이 성북동도 한양 도성의 북쪽이라 붙은 이름이고,

대전의 유성구 성북동 역시 성의 북쪽을 의미하는 '잣뒤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발음나는대로 '자티', '자치'라고도 부른답니다.

 


 

방동저수지를 끼고 올라가다가 성북동 산성 못미처서 우회전 하여 도착한 곳인데,

이 마을은 또한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비보림으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마을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함께 돌을 쌓아 만들어진 용두탑이 있습니다.

신령한 기운이 머무는 곳이라 우리 나라에 넓게 퍼진 개신교회가

이 마을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네요~

 

 

 

 

 

비보림(裨補林, 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숲)이란,

마을의 허한 곳을 막고 마을을 지켜주는 의미로 만든 숲인데,

성북동 잣뒤마을의 비보림은 느티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2백년 된 느티나무, 4백년 된 느티나무 등 아름드리 나무가 서있는데요,

그냥 나무라고 가볍게 부르기도 황송한 생각이 듭니다.

이 나무가 심어진 당시의 임진왜란의 혼란한 상황을 기억하고 말없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증인, 아니 증목, 증수일테니까요.

아니면 이 곳은 당시엔 아주 시골 산골 마을이어서 임진왜란의 화가 비껴갔을까요?

 

 

 

 이 커다란 느티나무가 굵은 밑둥으로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잔가지와 나뭇잎이 어~~~엄청납니다.

그 왼쪽으로 진짜 자그마한 건물이 보이는데요,

바로 성북동 열녀 은진송씨의 정려각입니다.

대전 외곽을 돌며 느끼는 것은 웬만한 땅은 은진 송씨 소유였고,

웬만한 이야기는 은진송씨와 엮여있다는 것인데요,

그만큼 조선시대 유학의 거두이면서 한밭지역을 근거지로 하였던

송시열, 송준길 등 은진송씨 가문이 한밭지역을 꽉 잡고 있었다고 보면 되겠죠?

 

 

 

 

 정려각 담장에서 뱀 허물을 보았습니다~!

호오~~~매미 허물은 본 적이 있는데 뱀 허물은 처음 보았어요~~

손으로 만져보았더니 아직 빠닥빠닥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뱀이 허물을 벗어던지고 간 지 오래되지 않은듯 합니다~^^

혹시 뱀이 허물을 혼자 벗어버리기 어려워서 벽돌의 마찰을 이용했을 수 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이근처에 은근히 뱀이 많다고도 하네요.

그렇다고 나쁜 마음 먹은 분들이 몰려오지는 않겠죠?

 

 

 

 

 아직 새벽 안개가 걷히지 않아 뿌우연 길을 올라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바로 대전시에 있다니~!

길의 폭과 분위기를 살리려고 이번 새벽 여행의 일행 중 뒷태 비주얼이 좋은 분이 모델을 서셨습니다~^^

다시 봐도 참 좋습니다~^^

 

 

 

 범바위에서 용바위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억새길로 명명되어 있는데요~

근데..억새가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드디어 용바위에 올라 대전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해가 뜨는 것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발 아래 바위 위에 물이 고인 이 자리가 바로

계룡산 용이 바위를 뚫고 나온 곳이라는 전설을 품은 곳이라고 합니다.

 

 

 

 

옆에 있는 이 구멍은 뭘까요?

이 구멍은 사람이 판 것으로 보이는데요~~

고인 물이 빠지라고 물길도 낸 것 같고요.

혹시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혈을 끊으려고 일제가 박았다는 쇠못을 빼어 낸 자리일까요?

사진찍느라 인솔자 안여종 선생님께 여쭈어보지를 못했네요.

 

 

 

 

 

 이 산길은 대전 둘레산길 10구간으로

방향에 따라서 빈계산으로도 갈 수 있고, 대정동 임도로도 갈 수 있군요.

정면에 보이는 곳으로 오르면 성북동 산성이 있습니다.

 

 

 

 

용바위에서 좋은 새벽기운을 듬뿍 받고

새벽 국수에 정성 계란 등 새벽 간식도 먹고나니

정신적 물리적인 에너지가 꽉 차는 뿌듯함을 느끼며

성북동 봉덕사 보살입상을 보러 갔습니다.

이 절은 봉덕사 또는 봉수사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곳에 있는 석조보살입상은 원래 진잠초등학교 옆에 엎어져 있어서 몰랐던 것을

꿈에 현몽하는 바람에 알게되어 파내어 가져다가

깨어진 얼굴을 약간 성형하고 이 자리에 세웠다고 합니다.


 

 

 맞배지붕을 한 적광전이 새벽바람에 고요하게 있고

기존 사찰의 양식에서는 좀 벗어나는 것 처럼 보이는데 뭐 오래되지 않은 요즘 사찰이니까~

절마당에 석탑이 하나 있고 네모난 연못을 파놓았네요.

천원지방의 의미로 땅 위에 네모 연못을 판 것이겠죠?

연꽃 몇 송이가 수줍게 올라와 있습니다~^^

 

 

 

 '적광전은 세상의 번뇌를 끊고 적정(寂靜)의 진리에 의하여 발하는 진지(眞智)의 광명.

또는 고요히 빛나는 마음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는데요,

대웅전은 부처님을 가운데 모신 경우에 쓰는 말이고,

비로자나불을 가운데 모신 경우는 적광전으로 한답니다.

아미타불을 모신 곳은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 하는데 동향으로 짓는다고 합니다.

사찰기행에서는 주건물의 명칭으로 미루어 누구를 모시고 있는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관음보살을 모시면 관음전, 미륵보살을 모시면 미륵전이 됩니다.

‘전(殿)’은 임금이 있는 궁궐이나 최고의 부처님이 계시는 건물에 붙이는 명칭이지요~

 

 

 

 근데 부처님은 알겠는데, 비로자나불은 뉘신지?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아 검색해봅니다~^^

모든 부처님의 진리의 모습, 진신인 법신불로,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라고 합니다.

교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어렵습니다.

하나 씩만 한번에 알려면, 비로자나불은 손을 가운데로 모아 왼손의 검지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잡고 계시네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겠죠?...

 

 

 

 

 

아래의 설명판에서도 나오듯 고려시대 이후 중부지방에서 유행한 토속적인 양식이라고 하는데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몸에 걸친 옷의 주름이

잘 표현되었다기 보다는 참 성심껏 표현되어 있군요.

보관을 높게 쓴 모습은 잘 나타나는데

상대적으로 얼굴을 표현하는 데는 참 인색했네요...

조금만 더 굴곡을 살렸으면 훨씬 좋았을텐데요~~

유교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불교 미술은 많이 쇠퇴했겠지요.

 

 

 

 

 

 

  

석탑의 틈새에 보니 오래되어 삭은 것처럼 보이는 동전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누군가가 작은 일을 염원하면서 틈에 밀어넣어

그들의 마음이 탑을 받치고 있는 것이겠죠.

 

 

 

 

 

 멀리 나간 것도 아니고 바로 대전시 유성구 성북동에서 만나는

아름답고 조용한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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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동 산 84 성북동산림욕장

문의 : 042-825-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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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용바위, 계룡산 용이 나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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