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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전시ㆍ강연

타임월드 문화센터에서 만난 체코의 역사와 대학




 

타임월드 문화센터에서 만난 체코의 역사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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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학의 중심지였던 전통이 있어서 그럴까요?

대전은 타 지역에 비하여 대학, 도서관, 관공서, 예술의 전당 등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준비하는데요, 백화점의 문화센터도 매학기마다 인문학 특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대전의 유력 백화점 중의 하나인 갤러리아 타임월드 문화센터에서는

이번 가을 학기를 맞아 준비된 갤러리아 기획 특강(수강료 1,000원) 중에

한국외대 김신규 교수(정치학)의 '체코 역사와 대학' 강의가 있어서 신청하고 들어보았답니다~(8월11일)

 

 

 

체코라고 하면 한국과는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인데요,

이번 강의를 듣다보니 동유럽이라고 하기에는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센트럴 유럽'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고,  스스로도 '유럽의 심장'이라고 자처하고 있다네요~

강의를 담당한 김신규 교수는 체코 카렐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카렐대에서 2년 반 동안 교수를 역임하였다고 합니다.

 

 

 

체코는 위의 사진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 소련의 위성 국가가 되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의 유적이 많이 남아

현재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고,  2004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고 하네요~

 

 

 

관광객 숫자가 무려 연간 1억 명이라고 하는데요, 지리상 통과자를 포함한 숫자이고,

실제 숙박을 하는 관광객은 2,500만 명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체코 인구가 천만에 불과하다는데 인구의 두배 반 정도의 관광객이라니~!

우리나라로 치면 관광객이 1억2천5백만 명은 찾아와야 비율이 비슷해지겠네요...

동유럽으로 구분된 국가 중에 대한항공 직항 노선(프라하 왕복, 주 7회)이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합니다.

 

 

  

체코는 보헤미아 지방과 모라비아 지방 두 곳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2012년의 일인당 GDP가 $27,000 가 넘네요~!

구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던 나라가 우리나라 보다 못 살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가 멈칫거리고 있는 사이에 현재는 우리의 수득 수준을 넘어섰다고도 합니다...

사실 공산주의 체제하로 넘어가기 전 1930년대 까지는

국민소득이 세계6위일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네요...

 

 

 

체코는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독일,폴란드,러시아,오스트리아...등등 엄청 외세의 침공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960년대 국가를 세우고 독자왕국을 유지한 것은 2~3백년에 불과할 정도라고 하네요...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는 '심장부 이론'이란 것이 있는데,

'중요한 포인트만 점령하면 나머지 점령은 쉽다'라는 내용으로, 독일의 히틀러도 이 이론을 신봉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때 유럽의 중심부이면서 과학기술이 발달한 체코부터 점령했다고 하네요...

옛날의 로마카톨릭 교황도 '체코부터 포교해야 한다'고 했대요~~

 


 

<체코 보헤미안은 집시가 이니예요~>

 

체코 보다 보헤미아왕국의 후예로 주장하여 보헤미안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유럽에서 흔히 말하는 집시 보헤미안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시저의 갈리아원정기에 보면, 현 프랑스지역에는 골족이 거주했고 (토템이 닭-현재도 프랑스에 닭 문양 많음),

바바리아족은 독일지역에 거주했는데, 로마군이 원정후 동진하여 체코로 갔을 때

당시 켈트족의 지파인 보히족이 살고있어서 보헤미안으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로마군이 다시 헝가리 쪽으로 진격하여 피로를 풀 때 쯤 온천수가 나와서

물의 도시(부다페스트-물의 도시 의미)를 세웠고,

크로아티아로 진격하여 로마퇴역장성의 거주지를 건설하였는데

고대 로마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는 건축물이 현재 크로아티아에 많이 남아 있어서

한국 관광객이 몰린다지요.(꽃보다 ** 라는 TV 프로그램 영향도 있긴 하지만~^^)

 

16,7세기 유럽의 강대국 오스트리아황제가 자신의 지역이 따분하다고 프라하로 도읍을 옮겨

프라하의 현 건축 세우고, 당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던 집시를 불러 들여 즐겼는데,

보헤미아의 국왕이란 명칭을 제일 좋아했던 루돌프2세 황제가

집시에게 유럽통행증을 써주고 재미있는 꺼리를 구해오라고 했답니다.

프랑스에서는 그들을 '보헤미아에서 온 사람'으로 파악하여 '라 보엠'이라고 불렀고,

그것이 바로 보헤미안이 집시의 대명사가 된 이유라니...

진짜 보헤미안들은 그 명칭으로 집시 취급을 당하면 억울하겠네요~^^

참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프라하는 하루면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라고 합니다.

유럽연합 28개 국가중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물류의 중심지로 위치도 좋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기업들이 중간지역인 체코로 들어가서 중심지로 삼는데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등도 유럽 물류중심 기지로 체코에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특히 국제적인 S전자는 영국여왕과 십년 계약을 하고 세금혜택을 받으며 영국으로 들어갔다가

영국에서 유지비가 많이 들고 지역상 중심도 아니니까 여왕과의 약속을 깨고

3년만에 체코로 이전하여 엄청 욕을 먹었다네요... 그런 일도 있었군요...

 

 

 

체코는 유럽물류의 중심지인데다, 서유럽 국가에 비해 물가가 싸고 과학인문 등이 발달하여

똑똑한 사람이 많고, 현재는 한국보다 신용등급도 높다고 합니다. 음...

1989년에 벨벳혁명(평화적인 혁명)으로 공산주의 버리고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동유럽 최초의 대학, 카렐대학, 1348년>

 

카렐4세 황제는 프라하를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하였답니다.

당시의 신성로마제국은 군주국 4나라와 성직자 3국이 모여 만든 가상의 제국으로, 황제를 선출하였는데

황제가 된 카렐4세가 신성로마제국을 가상이 아니라 실체로 만들 준비를 하며 세력을 키운 후

'앞으로는 체코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 황제를 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체코말이 어려워 구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카렐4세 본인은 체코말을 할 줄 아니까

자신의 자식에게 세습하려는 생각이었겠지요.

 

 

 

그리고 1348년에 동유럽 최초의 대학을 세웠는데 바로 카렐대학이랍니다.

지금까지 체코의 문화,역사가 유지되고 있는 중심에 카렐대학이 있는데

체코말 교육을 강화하고 전통과 혈연을 중시하여 지금의 독일,오스트리아, 폴란드 지역민들이 반발하며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라이프찌히, 비엔나, 폴란드에 대학을 세우게 되었답니다.

 

 

 

유서깊은 역사를 지닌 카렐대학의 도서관은 5~6층 높이의 실내에 현재 고서 위주로 정리되어 있다고 합니다.

무슨 화려한 유럽왕실의 궁전을 보는 분위기있데요,

영화, 드라마, 미술, 음악을 공부하는 대학에 한국학생이 현재 120명 정도 다닌다고 합니다.

체코어로 수업을 들으면 수업료가 무료인데, 너무 어려워서 힘들고 영어강의는 수강료가 비싸다네요...

'이곳에서 공부하려면 체코말을 배워라'는 무언의 압력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야겠지요.

 

 

 

 

<얀 후스의 종교 개혁>

 

카렐4세가 죽은 후 귀족과 성직자가 득세하였는데,

당시에 토지 소유는 '귀족:성직자'가 '4:6'의 비율로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직을 팔고 사면서 농민들만 착취했는데, 당시 농민을 쥐어짜면 계속 나온다고 '로보트'라고 불렀다네요~!

흑사병으로 농민인구가 50%감소하여 살기 힘들어서 천국가고 싶어하니

그 심리를 이용하여 교회가 파는 면죄부가 등장하였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동상은 얀 후스의 동상인데, 그는 카렐대학의 총장으로 종교개혁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종교인 로마카톨릭은 농민들이 알기 힘든 라틴어로 미사를 드렸는데,

얀 후스가 농민에게 체코어 읽고 쓰기를 가르쳐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성당에서 체코어로 강론하면서

'헌금,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성경을 보는 것으로 종교는 충분하다'고 했답니다.

14세기에 참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실로 혁명가 사상을 실천하셨어요~~

현재 거대하고 화려하게 교회를 세우고 일부는 목사직도 세습하는 우리나라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교황이 위협을 느끼고 얀 후스를  협박하니까, 얀 후스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하고,

교황은 얀 후스를 악마라고 파문했다네요...파문...요즘도 기사에 등장한 어휘죠.

교황이 '십자군을 조직해서 보헤미아로 원정가서 얀 후스를 죽여라'고 선포하였는데,

교황과 얀 후스가 종교 교리로 논쟁하기로 했다가 교황이 그 약속을 어기고

논쟁하러 온 얀 후스를 잡아 화형했답니다...

악마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하루에 장작 한 개씩 태워가며 거의 산 사람을 훈제해서 죽였다는데요...

그 사실이 체코에 알려져서 체코군  8,000명과 십자군 30,000명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세번 싸워 세번 모두 체코가 이겼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 붉은 깃발에 성배와 거위가 그려져 있는데, 후스가 거위를 뜻하는 말이어서 거위를 그렸고,

당시 서민에게는 성혈인 와인을 주지 않아서 달라는 의미로 성배기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들을 성배주의자라고 하는데, 유럽에서 유일하게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에

신분의 상하가 없다는 교리를 만들었다니 참 앞서가는 민족임에 틀림없네요~!

영화 '인디아나 존스-성배를 찾아서'에서 몇백 년동안 성배를 지키는 기사가 나오는데

바로 이 성배주의자 기사랍니다. 참...아는 만큼 보인다고~ 재미있습니다~^^

 

후에 내분이 일어났을 때 합스부르크 왕가가 체코를 점령하고 카톨릭이 다시 들어왔을 때

이를 반발한 체코의 귀족들이 네덜란드, 독일 등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유럽의 개신교의 시작이라고요.

네덜란드 종교개혁 후 체코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네덜란드와 체코는 현대사회에서도 아주 개방적이고 세속적으로

동성애합법화에 앞장 서고 국민의 종교비율도 최저라고 하지만

국민의 행복도는 한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카렐4세는 또한 예술가를 모아서 프라하를 예쁘게 꾸미면서 비투스성당도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348년 부터 무려 650년을 걸려 거의 2000년까지 지었기 때문에 각종 시대의 중요한 건축양식이 다 있다네요!

그리고 카렐다리도 세웠는데 난간 좌우의 조각상이 모두 국보급이라 현재는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고

실제 다리위에는 복사본을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의 전쟁을 거부하는 체코인>

 

17세에 남아있던 체코의 후스파가 카톨릭계와 종교전쟁을 벌였는데,

이것이 기독교 구교와 신교의 마지막 전쟁인 30년전쟁으로

이때 체코인구의 60%가 희생되었다네요...세상에...

이후 너무나 큰 희생을 기억하는 체코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게 되어 저항하지 않고 그냥 항복하였는데,

히틀러도 체코에는 싸우지 않고 무혈입성하여 체코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체코를 쉽게 점령한 히틀러가 폴란드도 체코와 같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폴란드는 끝까지 저항하고 싸워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커지게 되었다고요.

 

 

 

소련이 들어왔을 때도 저항없이 항복하여 공산주의 위성국이 되었는데

1968년 개혁공산주의자인 두브체크의 프라하의 봄을 지나 1989년 벨벳혁명으로 평화적인 민주화를 성취하였고,

가까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의 기억때문에 지금은 미국과 친하기를 더 원한다고 합니다.

 

겨우 100년 사이에 카톨릭신도가 전국민의100%에서 26.8% 로 줄어들고

전반적인 유럽의 경향이 그렇긴 하지만 체코의 경우, 무교인 사람이 60%에 이를 정도로

유럽국가 중 종교비율이 제일 낮아서

종교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네요.

 

 

 

 

 

체코는 스메타나, 드보르작 같은 세계적인 유명한 음악가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프라하의 봄'이란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만든, 레이다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가 격추된 적이 있는데요,

바로 체코에서 만든 레이다에 잡혔기 때문이랍니다~ 그만큼 과학기술도 발달했구요~~

놀란 미국이 그 때 만들어진 레이다를 수거에 나섰는데,

하나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스텔스기가 북한에 못들어간다나 어쩐다나...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저 건물도 체코에 있는 것이군요.

많이 본 것인데...건축가가 누군지 잊었어요...

 

 

 

 

카를로비 바리는 영화제로도 유명한 온천 도시인데, 위의 자료에서 보이는 손잡이가 멋진 컵에

온천의 탄산수를 받아 마셨다고 하네요~~

그런데 손잡이 끝이 위로 뿔처럼 삐죽 솟아있는 것이 보이지요?

삐죽 솟은 컵손잡이가 바로 온천수를 마실 때 이용하는 빨대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체코의 13번째 유네스코 유적은 맥주라고 할 정도로 맥주는 전통적으로 유명한데요,

보통 당시의 맥주는 탁하고 걸쭉했는데 지금처럼 깨끗하고 맑은 맥주를 체코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체코의 부두바 맥주가 유명한데, 당시 체코에서 추방 당한 독일인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체코의 부드바 맥주를 비슷하게 주조하고 부드바의 발음을 살려 만든 맥주가 버드와이저라고 하네요.

체코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빵, 흐르는 빵'이라고 할 정도로 아침식사 대용으로도 하는데

식사 대용이라고 하여 맥주 마신 후의 음주운전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한시간 반에 체코의 역사와 대학을 돌아보기에는 매우 부족하였지만

그래도 얼마나 알찬 시간인지 역사의 상식을 꿰어 맞추며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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