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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공연

대전시 소극장 지원사업 1호 , 극단 드림아트홀 주진홍 대표를 만나다.




대전시 소극장 지원사업 1호, 극단 '드림아트홀' 주진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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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도시, 대전시에서 소극장 지원사업 1호는 극단 드림아트홀이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지원을 했다. 2010년에 7,000만원, 2011년에 3,000만원, 2012년에 3,000만원 지원해서 총 1억3천만원을 지원했다. 드림아트홀 주진홍대표는 지원금을 건물유지 제작비, 사무실운영비로 사용했다.


나는  대전의 소극장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서 드림아트홀 주진홍대표를 인터뷰했다. 성모병원 건너편에 위치한 드림트홀은 지하에 위치한 10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Q1.소극장 이름이 드림아트홀인데 이름의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드림이 영어인 꿈(dream)과 한국말의 드린다는 뜻이 있는데, 이 두가지 모두를 나타내는 의미로 극단드림이라 이름지었고 후에 소극장을 만들면서 드림아트홀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공연을 잘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정성껏 드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Q2.어떻게 소극장을 만들게 됐는지, 대전시 소극장 지원 1호라는데 그 과정을 말씀해주세요.

 

90년대 중반 대전에 예사랑소극장이 없어지면서 대전에는 연극 소극장이 전무하게 됩니다. 이후 대전의 연극계는 침체기에 젖어듭니다. 대부분의 연극인들이 자기의 소극장을 갖는게 꿈인데 저 역시 소극장을 갖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연습실에 의자와 조명기만 놓으면 되겠지 하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초과되었습니다. 카드대출 등으로 극장을 꾸몄습니다. 당시는 연극이 무척 침체되어 있어 공연장 대관이나 관객수입 등으로 극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서 극장수입이 하나도 없더라도 극장을 운영할 수 있는지 저의 재정상태를 파악했고, 그 계산속에 소극장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여년간 연극 소극장이 없던 대전에서 다시 유일하게 연극 소극장인 '드림아트홀'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관객이 없어 공연을 못할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다른 지원금 없이 공연수입만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2007년에 극장을 만들었는데 다음연도인 2008년에 시장님께서 저희 소극장에 공연을 보러 오셨습니다. 오셔서 소극장의 공연에 감동을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대전 인구의 3분의 1 수준인 청주에도 연극 소극장이 대여섯개가 있는데 대전에는 현재 드림아트홀이 유일한 연극소극장이라는 말씀을 들으시고 연극 소극장 지원을 추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섯 개의 소극장이 지원을 받았고 개별적으로도 소극장을 개관하여 지금은 10여개의 연극 소극장이 대전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Q3. 대전의 소극장의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80년대 이전에도 소극장이 간혹 운영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소극장은 1983년경에 개관한 앙상블소극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카페 떼아뜨르, 새벽 소극장, 까치골 소극장, 예사랑 소극장 등이 몇년씩 운영되다 없어지곤 했습니다.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연극소극장이 생겼다 없어지면 다른 소극장이 생겨나고 해서 계속 소극장이 한두개씩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예사랑소극장이 없어지면서 10여년간 연극소극장의 맥이 끊어지게 됩니다.



Q4. 지금까지 드림아트홀에서 올린 작품은 몇 작품인지요? 그 작품 중에서 드림아트홀이 창작한 작품도 여러 편으로 알고 있는데 제목과 작가를 알려주세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소극장인 드림아트홀에서는 두가지의 형태로 공연이 되는데요, 하나는 저희 극단의 자체공연이 있고 다른 하나는 다른 극단에게 대관형태로 빌려주어 공연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 극단의 자체제작으로 10편을 공연 했고 대관공연으로 약 20여편 공연한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극단을 운영하면서 가능하면 저희 창작품을 제작하여 공연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서울등에서 공연되었던 작품을 작가등의 허락을 구하고 단기간 공연을 하는식으로 공연을 하였는데 저는 그럴경우 극단의 발전이 어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 극단의 고유 레퍼터리가 있어야 공연이 계속 이어질 수 있고 기획적인 면에서도 작품의 승부를 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만의 창작초연작품을 무대에 올리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만의 레퍼터리로 '선물', '경로당 폰팅사건', '구름다리 48번지', '정글뉴스', '도토리의 여행', '바그다드 여인숙' 등을 공연했고 저희 고정 레퍼터리가 되었습니다. 이 중 경로당폰팅사건과 바그다드 여인숙은 이충무 작가의 작품이고 나머지는 제 아내인 김경희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물론 '경로당 폰팅사건'입니다. 대전연극의 역사에서 계속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대전연극의 최다 관객동원, 최장 공연기록, 최다 공연매출수익, 최다 배우출연 등 모든 것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최초로 상업적으로 서울에 진출하여 대학로에서 2년간 공연을 하였습니다. 한국소극장협회에서 주최하는 디페스타 축제에 초청되어 서울 대학로에서 처음 공연을 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우수작으로 초청공연을 하였고, 제주 해비치 아트페스티벌에 쇼케이스로 참석, 일본초청공연, 소외계층문화순회사업으로 3년 연속 선정, 전국 각 문예회관 등에 수십차례 초청공연, 춘천국제연극제초청공연, 통영국제연극제 개막공연 등 다양한 공연과 초청을 받았습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서울이나 중앙정부, 타 지역에서 더욱 관심을 갖고 초청 및 지원을 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Q5. 극단의 단원수와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현재 단원은 15명 정도입니다. 3명의 기획팀 직원이 있고 나머지는 배우들입니다. 작품의 분위기에 맞춰 배우들을 섭외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극단 소속의 배우들이나 타 지역의 배우들을 섭외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Q6.사모님의 작품도 여러 편이라는데, 사모님과의 만남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 아내는 92년도에 만났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임용을 받기 전에 연극을 배우면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아내가 극단에 입단을 하였고 극단에서 처음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국어교사이고 문학창작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희곡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작품들을 집필하고 공연하였습니다.




* 공연사진은  모두 대전시블로그기자단 허윤기 목사님의 작품입니다. 허윤기 목사님은 대전의 소극단들의 공연사진을 촬영해주고 전시하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Q7 창작극 '바그다드 여인숙'은 대흥동의 산호여인숙이 모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산호여인숙' 만든 분도 대표님이라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어려서부터 연극을 하였고 대부분을 대전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대전에서 태어나서 계속 생활을 하고 있는데 서울 등으로 진출할 기회도 있었지만 대전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고향인 대전이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2006년도에 사회복지를 하는 친구와 원도심문화예술축제를 2년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2008년도에는 지원이 끊기게 되어 원도심축제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취지가 좋아 제가 개인적으로 계속 진행하기로 하고 어떻게 축제를 진행할까 고민하던 차에 원도심에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극단마당대표인 손종화, 문화예술잡지 토마토 편집장인 이용원, 당시 대전문화연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던 안여종, 카페비돌 대표인 이흥석 등과 함께 '대흥동립만세'로 축제 이름을 바꾸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6회의 대흥동립만세 축제를 진행하였습니다. 대전의 대안축제로 자리잡기를 바라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타지역에서 오는 예술인들이 숙박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어 마땅한 곳을 알아보다가 '산호여인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약 10여년간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는데 다들 그 장소를 마음에 들어하여 집주인을 만나 상황설명을 하고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건물 보증금은 제가 카드대출을 받아 지불하였고 대흥동립만세에 함께 참여했던 예술인들이 직접 인테리어를 담당하여 손수 꾸몄습니다. 그런 과정속에서 '산호여인숙'이 탄생하였고 그곳을 배경삼아 '바그다드 여인숙'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출연했던 배우중 한 명이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 주진홍 드림아트홀 대표




Q8.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와 대학원을 늦게 진학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목원대대학원에서는 무엇을 전공하셨나요?


제가 연극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연극작업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4년도 2월달에 결혼을 하고 그해 3월에 대학입시학원에 등록을 하여 입시준비를 하였습니다. 제가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4년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 만의 일인데 학교 졸업후에도 계속 연극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어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학과를 수료하였고 중부대학교에서도 공연예술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목원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는데 문화예술과 사회복지를 연결하여 문화복지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학원만 세곳을 다녔네요.




Q9. 대표님이 초등학교 때 뮤지컬에 출연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주연으로 연극에 참여한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연극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니 뮤지컬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더라고요. 사실은 여름방학 전부터 다 모집이 끝나서 방학때도 계속 연습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배우들이 더 필요했는지 추가로 모집을 하는거였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제가 들어가게 되었고 가보니 대사한마디도 없는 군사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대사 한마디 없이 뮤지컬 신데렐라를 공연하였습니다. 당시로는 매우 크게 공연을 했던 것 같습니다. 부사동 사거리에 명보극장이라는 영화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이후 대전MBC에서 초청하여 방송국 녹화장에서 공연을 다시하여 녹화하고 방송으로 일주일정도로 나누어 방송까지 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예술제를 하는데 연극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도 있고 해서 지원을 하였고 이 때는 시집가는 날에서 주인공인 맹진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연극연습은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2학년의 거의 한학기를 준비하여 지금은 없어진 연정국악문화회관(당시에는 대전시민회관이었습니다) 대강당에서 공연을 하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로 내려갈 때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웬지 모를 허무함과 드디어 공연을 끝냈다는 홀가분함, 서운함 등등이 물밀 듯 밀려오는데 30여년간 연극을 하면서 그 때가 가장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나니 생활의 리듬이 깨져 버린 듯 혼란스러웠습니다. 문득 '이제는 연습하러갈 시간인데'라고 생각하다가 '아 공연이 끝났지?'라고 깨닫게 되고... 아무튼 이런 방황을 하고 있는데 시내에 단원을 모집한다는 전단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더 기뻤던건 청소년부도 모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12월 경에 극단 마당에 청소년부로 입단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연극과 인연을 맺게된 이야기입니다.


 


Q10. 서울과 가까운 대전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는데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극단과 소극장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극단의 일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가장 큰 어려움은 배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배우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대전에서 그나마 적지않은 배우들이 서울로 진출을 합니다. 그들의 장래를 위해 반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은 대전에 배우의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연극공연들과의 힘겨운 싸움입니다. 대전에서 공연되어지는 연극작품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대전에서 제작된 공연과 외부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기획사들이 흥행을 목적으로 대전으로 들여와 무대에 올리는 공연입니다. 대전의 극단들은 작품을 1년에 두세차례밖에 제작을 못하지만 기획사들은 거의 매달 한편씩 작품을 수입해 와 공연을 합니다. 따라서 홍보,맡케팅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전 극단들의 활동은 힘겹기만 합니다. 몇 년전 영화계에서 우리나라 영화를 보호하는 차원인 스트린쿼터에 대해 논란이 많았었는데 그와 같은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Q11. 드림아트홀이 대전 시민을 위해서 봉사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우선은 대전연극의 새로운 부흥기를 견인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일이라고 봅니다. 드림아트홀의 개관으로 대전연극계에서 관객들의 발걸음을 연극공연장으로 향하게 한 점과 대전시민들에게 대전에도 연극소극장이 있고 그곳에서 대전의 연극공연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소외계층에게 공연관람의 기회를 제공한다던지, 연극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 등 일반적인 것들도 있지만 위의 내용이 가장 크게 봉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전에서 자체 창작한 연극인 '경로당 폰팅사건'의 전국적인 공연으로 대전문화예술의 수준향상과 확산에 기여한 점 등이 있습니다.


 


Q12. 드림아트홀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끊임없는 창작품의 개발로 대전만의 고유한 작품을 계속 생산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대전이 서울과 가까워 배우와 관객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거꾸로 말하면 대전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량을 키워서 대전이 문화예술의 1번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작품을 제작하면서 무대장치, 조명, 음향 등 취약한 부분이 많은데 예술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술지원센터”를 설립해 보는 것이 꿈입니다.


 


Q13. 출강나가시는 학교는?


그동안 중부대학교, 한남대학교, 대덕대학교, 전주예고, 성남고등학교 등에 연극과 관련된 수업을 했습니다. 그러다 '경로당 폰팅사건'이 서울공연과 대전공연, 지방초청공연 등으로 정신이 없어 수업을 나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는 청운대학교 방송연기학과에서 이번학기에 요청이 와 그곳과 세종시에 있는 성남고등학교에서 공연제작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전시민대학에서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극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Q14. 대전 시민에게 바라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질문 이외에 더 알려주고 싶은 점도 말씀 해주세요.


대전연극이 다른 어느지역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시민들께서는 막연하게 서울에서 내려온 연극이니까 더 좋겠지 하고 타지역에서 수입된 연극을 선택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대전연극을 더욱 사랑해 주시고 관심가져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타 드리고 싶은 내용은 경로당 폰팅사건의 공연과 관련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경로당폰팅사건"은 대전 예술계에서 대단한 사건입니다. 대전 연극의역사를 완전히 다시 쓰고 있는 작품인데 대전시에서 이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대전에 연극이 생겨나고 지금까지 대전에서 연극을 공연하여 돈을 번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경로당폰팅사건'은 현재 대전시의 별다른 지원금 없이 자체적으로 계속 공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04년도에 처음 ‘경로당폰팅사건’이 공연되고 2006년도부터 저희극단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대전의 극단에서 대전의 작가와 연출, 배우가 만든 순수 대전연극입니다. 이러한 공연이 10여년간의 대전공연을 진행하고 있고 서울 대학로에서 2년간 장기공연을 했으며 우리나라 국립극장의 가장 큰 행사인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공연하였고 '통영국제연극제' 개막공연, 춘천국제연극제 초청, 창원코미디연극제 초청 등 많은 연극제에 초청되었습니다. 또한 여러 곳의 지방 문예회관에도 초청받아 공연을 하였는데 올해만 해도 강릉, 창녕, 군위, 칠곡, 여수 등에서 초청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여수는 민간기업인 GS 칼텍스에서 설립한 예술회관으로 3일 5회공연의 전석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담당자로부터 서울의 많은 기획자들이 저희 공연을 추천하였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공연되어지는 연극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타지역에서는 많은 성원과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인데 대전시에서 몰라주는 것이 아쉽습니다. 서울 대학로에서 계속 공연을 하고 싶지만 그곳의 제작환경상 대관료, 기획비 등 초기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일개 극단에서 이를 모두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년에도 대전만의 고유 컨텐츠를 개발하자는 'made in 대전' 프로젝트를 시행하였으나 별다른 작품을 찾지 못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저희 '경로당폰팅사건'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전의 문화예술 컨텐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 15. 시집어른들과  연극 '경로당 폰팅사건'을  보러가다.


극단 드림아트홀 대표 인터뷰의 마무리는  연극 '경로단 폰팅사건'을  보러가는 것으로 했다. 어느 노인정의 전화요금이 300만원가까이 나와서 원인을 찾는  과장을  코믹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관객들이 자주 폭소를 터트렸지만 극의 내용은 현실을 풍자한 노인 문제를 그린 수작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1시간 30분 공연이 몇분만에 끝났다고 느낄 정도였다.




드림아트홀 카페에 가입하면 입장료를 50% 할인 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와 91세 시아버님, 큰동서형님과 시누이형님 모두 5명이 공연을 보았다. 우리는 앞으로 자주 연극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카페 드림아트홀 바로가기 [회원가입하세요]  http://cafe.daum.net/dreamart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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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502-15 드림아트홀

전화번호 : 042-252-0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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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소극장 지원사업 1호, 극단 '드림아트홀' 주진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