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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공연

연극 "진정한 진실" -남아프리카의 광주민주화항쟁!!

 

 

 

연극 "진정한 진실" 남아프리카의 광주민주화항쟁!

- 소극장 핫도그ㆍ대전 중구 대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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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핫도그에서 현재 공연중인 "진정한 진실" 을 만나고 왔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배우이며 극작가, 연출가인 존 캐니(John Kani)의 원작 

"Nothing But the Truth"를 번역 각색하여 목원대 홍주영 교수께서 연출을 한 작품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백인우월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난 

'소웨토 봉기'(우리나라의 광주민주화항쟁과 비슷한 학생들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항쟁)를 배경으로 

연극은 출발하여 진행됩니다. 


결국 화해에 치중해 정의를 상실했던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안타까움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연극, "진정한 진실"

가끔 진정한 진실이 불편한 진실이 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진실 없이는 어떠 화해나 용서, 사랑이 일어날 수 없음을 

연극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럼, 사진과 함께 연극으로 떠나보실까요?



연극의 시작은 시포 마카야(최창우 분)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처음 이 대사를 귀담아 듣지 못했는데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동생 템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도서관 부관장으로 재직하며 유일한 바램이 도서관장이 되는 것인데

딸 탄도와 런던에서 돌아오는 25년전 헤어진 동생 템바의 시신과 조카 만디사와의 만남으로

이 연극은 출발합니다.



시신확인을 위해 필요한 서류라고는

어릴적 받은 침례증서가 전부이기에

이 증서를 챙겨 시신확인 및 인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포 마카야의 딸 탄도 마카야(이새로미 분)..


그녀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아버지의 규칙에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딸입니다.

물론 그녀 안에도 자유에 대한 갈망은 있으나

아버지의 규칙을 더 중요시 여기며 자신을 억제시키는 캐릭터입니다.



덩그러니 남아 있는 템바 마카야의 침례증서...


이것이 동생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서라니...

대체 동생에 대한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없어진 걸까요? 없애버린 것일까요?



연락을 받고 장례식을 준비하러 나가는 시포 마카야...



영국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남아프리카로 귀국한 만디사 맥케이(임미소 분)


탄도와는 달리 자유롭고 독립적인 캐릭터입니다.

이런 그녀는 사촌언니 탄도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25년만에 만난 조카 만디사가 반가울법도 한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첫 만남부터 갈등으로 시작합니다.


대체 이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5년만에 만났어도 사촌들은 쉽게 친해집니다.

아니, 마치 친자매처럼 금방 친해지고 서로에 대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유골을 앞에 둔 채 그들의 대화는 점점 깊어갑니다.



아버지 시포는 한 번도 어머니에 대해, 그리고 작은 아버지(템바 마카야)의 이야기를 

딸(탄도 마카야)에게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조카(만디사 맥케이)역시 그 이유가 궁금하기만 해집니다.



이런저런 대화 속에서 딸(탄도 마카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구입한 옷을 보여주고,

디자이너를 공부하며 꿈꾸는 사촌(만디사 맥케이)은 그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 디자이너를 만날 기대에 들뜨지만...



 

아버지(시포 마카야)는 보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에 조카(만디사 맥케이)는 사촌언니(탄도 마카야)의 의견이 중요하다며

큰아버지가 결정할 수 없다며 반박을 하고..


결국 갈등은 극에 달합니다.



아버지(시포 마카야)를 중심으로 좌우에 앉은 사촌들...

그리고 아버지는 25년간 말하지 않았던 금기의 이야기를 꺼낼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그 금기의 이야기...

극에서 말하는 "진정한 진실"에 대해 아버지는 입을 엽니다.


25년전, 자신의 동생(템바 마카야)를 닮고 싶어하는 자신의 아들이

소웨토(Soweto) 봉기에서 경찰의 총에 죽음을 당하자

동생 템바에 대한 원망이 생기게 됩니다.


소웨토(Soweto)봉기 


1976년 남아공 백인정권은 흑인학교의 모든 과목을 아프리칸스로 가르치도록 결정합니다.

아프리칸스는 17세기 네델란드계 백인이 이주하면서 전파한 언어로

흑인들에게는 차별과 억압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런 정책은 민족 고유의 언어를 말살시키기 위해 

폴란드에서 모국어 사용을 금지시킨 제정 러시아나

조선에서 일본어를 강요한 일본 제국주의 정책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결국 1976년 6월 16일, 올란도 웨스트(Orlando West)에 모여 평화적인 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향해

경찰은 해산명령을 내리고 불응하자 결국 경찰은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음뷔사 마쿠보(당시 18세)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피를 흘린 채 숨진 헥터 피터슨(당시 13세)을 안고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거리를 달려오고 있었는데

이것을 본 사진기자 샘 은지마는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음 날 흑인 일간지 "더 월드"의 1면에 실리게 됩니다.


결국 남아공 흑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이고

소웨토 봉기 당일에 35면이 사망하고 220명 부상,

이후 15개월 동안 소웨토에서는 575명(비공식 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oweto_uprising


우리나라와의 근현대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공통점에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생 템바 마타야는 자신의 아내와 3년간 잠자리를 해 온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민주화 항쟁 영웅이었던 동생은 남아공에서의 영국으로 급하게 떠나게 되고

그의 사랑하는 아내는 18개월 된 딸 탄도 마카야를 남겨둔 채 멀리 떠나갑니다.


자세히 따져보니 탄도 마카야는 자신의 딸이 아닌

동생의 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냥 조용히 자신의 딸처럼 키웁니다.


그것(진정한 진실)이 가져올 아픔을 알기 때문에

25년간 가슴에 묻어둔 채 그렇게 살아온 것이죠.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동생(템바 마카야)을 위해 희생했건만

결국 자신의 아내와 가정,

그리고 자신의 아들까지 뺏어간 동생이 밉기한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되고 싶었던 도서관장이 되지 못하고

조기퇴직과 7번째 부관장으로 남을 것을 결정해야 하는데...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앗아간 동생이 유골이 되어 돌아오고

그렇게 자신이 동생에게 준 모든 것을 상기하며 다시 돌려달라고 나직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나 다시 그것을 갖고 싶다고...

그것을 돌려달라고...




모두 뛰쳐나갔던 딸과 조카는 다시 돌아옵니다.


이제 아버지(시포 마카야)는 흥분해서 외칩니다.

그 경찰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도서관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자신 안에 감추어 두었던 응어리를 그렇게 쏟아냅니다.


그렇게 담아 두었던 진정한 진실의 무게를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한 아버지..


아니 이미 용서한 아버지...


조카 만디사 맥케이는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를 하고...



불편한 진실이었던 진정한 진실이 가져온 것은

파괴가 아닌 용서와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그 자유를 맛 본 아버지...시포 마카야...

그 인고의 세월을 지내온 그의 삶의 무게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는 딸(탄도 마카야)를 억누르던 자신을 인식하고는

딸에게 자유롭게 살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연극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며 끝을 맺습니다.



자신의 동생의 유골이 담긴 함을 안고

이제 마지막 용서와 화해를 말합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1960년 이래 저질러진 아파르트헤이트의 집권 이후의 모든 범죄에 대해

보복대신 화해를 유도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두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위원장이 되어 

인권 유린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 1995년에 발족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2년 동안 2만 장이 넘는 서류를 검토하고 849명을 사면했으나

5,392건의 사면 신청은 기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언론 역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인종차별에 대한 기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빈곤문제에 대해서 기업들에게 특별세를 부과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결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성공적이었으나

다만 화해에 치중한 나머지 정의를 상실했다는 비난을 듣기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동생을 용서하고 화해의 포옹으로 연극은 마칩니다.




그리고 이 집의 원래 한 식구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며 연극의 조명은 꺼집니다.





막을 내리기 전에 꼭 한 번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남아프리카 사람들이 아픔과 슬픔을 대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한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그 아픔과 슬픔의 역사와 너무나도 비슷한...

하지만, 진실과 화해위원회처럼 진상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남아공은 그나마 더 멋진 나라같아 보입니다.


 4월 7일까지 소극장 핫도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대전의 소극장, 대전이 아니면 그 누가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찾은 어제 월요일은 공연 4일째였는데, 

누적관객 100분도 안되는 현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3년 대전, 소극장 연극의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산으로 들로 봄꽃만 보시지 마시고
대전의 소극장 연극의 꽃도 아껴주세요~~~



자세한 공연 문의는 042-829-7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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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208-3 소극장 핫도그

문의 : 042-226-7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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