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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일상다반사

[공간을놀다 #7] 대흥동 문화공간 아트팩

 

대흥동 문화공간 아트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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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름달을 보고 기도하잖아요. 물을 받아보고 한다든지, 정월 대보름에 강강술래 하면서 돈다든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빌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듯 지금 꾸는 꿈도 언젠가는 되는 거에요. 다만 잊고 살고 싶지 않아서, 내 소원을 내가 잊지 않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달에 한 번 전시를 하자하고 생각한 거죠.' <꼬박꼬박 작가 이지혜 씨 인터뷰 중>


꿈을 꾸게 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꿈'하면 어딘지 모르게 어려운 이야기라고들 생각한다. 바삐 쫓겨 사는 현실의 문턱에서 이상이란 멀고도 먼 지향점일 것이다. 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 치여 지향점을 지양한다. 오늘의 안부를 묻는 이에게 '나의 꿈은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는 그저 대답할 것이다. '그냥 살죠, 사는 게 뭐 있어요.'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왔다. 삶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사회생활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나름의 인생에선 그렇다. 꿈을 가진 건 스무 살의 어느 지점에서였을 것이다. 꿈은, 어린 날 아빠가 선물해준 조그만 어항처럼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송사리 네 마리, 구피 네 마리. 조그만 어항이 풍성한 수초와 바글바글한 열대어의 군영 장소로 뒤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내게는 어항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아트팩에 발을 디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얼큰히 취해 친구들과 들린 카페 비돌에서 허클베리 핀의 사진전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전시를 하셨던 유병민 작가와 어찌 연락처를 주고받게 되었더란다. 평소에도 정말 좋아하는 밴드였고, 스무 살의 대부분이 담긴 밴드였기에 더욱이 눈이 갔었는데, 그 밴드의 십삼 년을 사진으로 담았다니 대단하기 그지없었다. 유병민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역사에 다름없었다. 누군가의 예술의 또 다른 누군가의 기록에 의해 새로운 예술로 변모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마음 한쪽을 울렸던 전시를 또다시 찾은 것은 일 년이 지나서였다. 십사 년 동안 담아온 허클베리 핀의 모습과 그가 그간 담아온 사진들을 새롭게 추려내 기획한 개인전 '밤이 걸어간다'. 우리는 그렇게 팔 개월 만에 처음 대면했더란다.


'그래요, 나는 김중만보다는 못 찍어요. 하지만 내게는 그 누구보다 오래 그들을 담아온 역사가 있어요. 나는 허클베리 핀의 스텝인 거죠. 다만 또 다른 방식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한 사람이, 한 그룹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말이지요.' 사진전 <밤이 걸어간다> 작가, 유병민

 

 

 

그간 페이스북과 블로그로 몇 마디를 나눠온 유병민 작가와 직접 만난 것은 대흥동의 어느 닭도리탕 집이었다. 얼큰한 국물에 쫄깃한 닭고기가 일품이었던 현대식당의 닭을 뜯으며 우리는 팔 개월의 어색함을 농으로 씻어냈다. '비돌 가기 전에 잠깐 들르고 싶은 데가 있는데, 같이 갈까?' 그가 우리를 인도한 곳은 이곳, 아트팩이었다.


그때 우리는 딸랑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 신기한 모양새를 띈 예술 작품들을 눈으로 훑었다. '인연은 꼭 나타나' 유병민 작가와 나, 그리고 봄이 서로에게 건넨 작품은 각기 다른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문구 자석에 새겨진 단어들은 각기 그때의 제 감정을 대변해요. 하나하나 제 마음이 꼭 들어찬 거죠.' 우리가 서로 주고받은 문구 자석을 만든 이지혜는 아트팩의 작가다. 아트팩은 총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계각층에 있는 미술 하는 친구들이 만든 그룹이란다. '저희끼리, 뜻 맞는 사람끼리 공간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거죠. 가장 나이 많은 오빠가 학부 때부터 만든 그룹이에요, 서로 공생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인 거죠.'

 

 

 

이지혜 작가는 다양한 작품 세계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지난 방문에 서로에게 선물한 문구 자석과 또 다른 작품들이 그녀 작품 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내가 오늘 그녀에게 구입한 작품은 북마크인데, 처음에는 옷에 있는 단추와 귀걸이 따위의 자신 주변에 있는 비즈들로 만들다가, 최근에는 반응이 좋아 비즈나 단추를 구입해 직접 제작하고 있단다. 북마크의 한쪽 끝엔 물방울 모양 동판이 매달려 있고, 그녀가 손수 새겨낸 표정이 박혀있다. '물방울 동판의 이름은 무심이에요. 대부분이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죠. 사실, 제 감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담기는 게 이 작품이에요. 무심할 땐 무심한 표정으로, 작품이 잘 팔리는 날에는 웃는 얼굴로 무심이의 표정이 결정되곤 하죠. 대부분이 무심이라 무심이지만.'

인연은 꼭 나타나. 유병민 작가가 건넨 인연이 이지혜 작가의 작품에 가닿았나 보다. 우리가 또다시 아트팩에 발걸음을 한 걸 보면 말이다. 인연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이지혜 작가는 살풋 미소 짓는다. 사실 그녀에게 '인연은'이라는 작품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났던 때의 작업이었는데 딱 골라가셔서 흠칫 놀랐죠.'

 

 

 

아트팩은 시작한 지 일 년 사 개월 차인 작업 공간이다. 그전에는 대부분 투잡으로 작품 활동을 병행하던 작가들이었고(지금 구성원 중 몇은 아직도 투잡을 하고 있다), 타칭 정신이 나가 생업 전선을 박차고 나온 가장 비현실적인 네 명이 만들어낸 공간이란다. 그런 공간에서 꿈을 꾸고 있는 이지혜 작가와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참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아리송한 일이다. 그녀는 단지 꿈을 꿨고, 인연을 그리며 '인연은'을 만들었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 인연을 구입했으며, 또 다른 오늘 나는 그녀와 꿈과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오늘도 꿈을 꾼다. 보름달을 보고 기도하듯 꼬박꼬박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전시를 열며 꿈을 꾸고 있다. 인연은 꼭 나타나듯 나는 그녀의 꿈 또한 하나의 인연으로 나타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꼬박꼬박 기도해야겠다. 내 소원을 내가 잊지 않도록, 내 꿈이 언제까지나 온전하도록.

 

 

대전블로그기자단 이한규 대전시청홈페이지 대전시청공식블로그 대전시 공식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