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는 미끄덩거리는 밥알이 싫어서
도리질을 치던 보리밥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외면하던 옛맛들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요?
계절 탓인지, 나이 탓인지
구수하고 정겨운 밥상 앞에 앉아서 맛있게 한 끼 먹는 일이 작은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신탄진 오일장에서
맛도 가격도 착한 보리밥 전문점을 만났습니다.
간판도 메뉴도 초단순.
단일 메뉴를 가진 전문점이 원래 맛집이라는 건 아시지요?
점심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치우지 못한 밥상들이 남아 있네요.
점심시간에는 배달할 일손이 없어 배달시킨 사람이 와서 밥상을 들고 가는 곳이었습니다.
식사하러 오셨던 이웃의 아주머니분께서도 홀일을 거들고 가셔야 할 처지였지요.
보리밥 한 가지 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옛 추억을 선물하고 풍요로움을 주시는 지,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값을 받고 행하는 일이라 해도 분명히 선업을 쌓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양푼에 상추가 담겨 나오고
국물은 개운하게 떠먹었어요. 국물김치는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정도로 맛있었답니다.
미나리를 데쳐서 푸르게 무친 나물입니다.
미나리의 향긋함이 씹을 때마다 입속에 퍼져 나오지요.
애기배추 겉절이가 먹음직하지요.
비빔밥에는 무생채가 빠질 수 없지요.
된장찌개에 담긴 씨래기 건더기도 건져내 비빔밥 나물로 얹습니다.
이렇게 양푼에 골고루 나물을 담았습니다.
담아놓고 보니 빛깔도 울긋불긋 참 보기가 좋네요.
금방 지어낸 보리밥이 한 양푼 넉넉히 담겨 나왔네요.
이제 밥과 나물을 함께 비비니 큰 양푼이 그득합니다.
입맛이 살아나 수저에 담긴 밥의 높이가 커져가네요.
보리밥은 금세 배가 꺼진다는 핑계로 참 배부르게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놓고도 숭늉 한대접까지 커피 대신 다 마셨지요.
신탄진 오일장 장터 골목길에서
보리밥 한그릇으로 행복한 되새김질을 한 하루였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