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외곽끝에 위치한 전민동 어쩌면 대전이면서 쉽게 접하기 힘든 동네이다. 위치상으로도 대전의 원도심 중구청 골목이나, 신도심의 중심인 둔산동 주변의 비교해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거주지가 유성인 분들도 쉽게 찾기 힘든 골목
그런 부분이 한편으로 이 골목을 특유의 지역 느낌이 나는 골목을 유지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전민동의 유래
전민동의 원래 이름은 정민이었다. 이 곳에 정민역이 있어 삼남과 서울을 잇는 교차로 역할을 하였으나, 정민역이 없어진 뒤 1914년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 자료출처 전민동 주민센터 -
전민동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우술군, 통일신라 때는 비풍군, 고려 때는 회덕현과 공주부에 각각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회덕현에 속하다가, 1895년(고종 32) 회덕군 구즉면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산촌리 ·탑립리 일부와 청류리를 병합해 대전군 구즉면 전민리가 되었다. 1935년 대덕군 관할이 되었다가, 1983년 대전시 중구에 편입되었다. 1984년 대전시 유성출장소 관할을 거쳐, 1989년 대전직할시 유성구 전민동이 된 뒤, 1995년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이 되었다.
전민동은 지리적으로는 인근에 대덕과학특구등의 연구단지가 위치해 있고 사회적으로는 과학과 근교농업이 어우러져있으며 행정적으로 고수준의 다양한 주민욕구를 불러 일으킬 만큼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특히 전민로 58길, 34길, 38길은 더욱 전민동 상권의 중심에 서있는 곳으로 재미있는 얼굴을 갖고 있다.
빌라와 주택이 어울려 있는 골목
전민동 58번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골목에는 일단 중심도로 옆골목으로 다양한 빌라와 개인주택들이 펼쳐져있다. 형형색색들의 빌라들은 신축을 한지 얼마 안된 모습으로 그 모습을 보이고 담이 낮아보이는 개인주택들의 모습은 예전에 살던 동네의 골목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도 그럴것이 바로 옆길로 대기업 연구소가 또한 위쪽으로는 한남대도 있으니 빌라가 많이 들어서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들
▲ 전민로 58번로에는 두개의 놀이터가 있다. 위에 있는 초등학교 주변 놀이터, 그리고 미스터 피자 앞 건너편에 있는 놀이터 한쪽은
다양한 문화적 공간이 숨쉬고 있는 골목
전민로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공방들과 가게들이 숨쉬고 있는 공간이란 사실이다. 한지공방, 고급스러운 카페, 그리고 인테리어 공방까지 숨어있는 공간 하나하나까지 골목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런 공간들은 전민로 많이 줄수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 친환경 가정식 요리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창밖 안의 풍경속에 발걸음을 멈추고 숨죽여 보게 만든다. 아 배고파!
맛있는 냄새속에 사람사는 냄새가 무더나고 있는 골목인 것 이다
요즘은 도심속 어느 골목에나 주위를 잡아끄는 맛집이 있듯이 전민로 골목에도 맛있는 집들이 즐비하다. 맛집들도 맛집들이지만 도심속 한복판에서는 느낄수 없는 정감있는 사람냄새가 나는 곳 이란 말이다.
▲ 즐비한 자동차속 밀림같은 이 골목의 끝자락에 보이는 가게의 간판은 도심속 오하시스같이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다1
그리고 이길의 끝에서
엉커있는 전선주의 모습처럼 다양한 공간이 숨쉬는 이곳은 어쩌면 대전의 또 다른 위성도시같이 독립적인 줄기의 가지로 이렇게 살아숨쉬고 있는 것 이다. 1980년과 2011년이 같이 존재할 것 같은 이 거리 전민로 58번길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또 다시 어떤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이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이 길은 또 다른 세상의 한편으로 항상 그렇게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이길의 끝에서 ...
골목길은 이렇게 변하고 시대가 흘러서 모든 시간들속에 똑같이 사라져 갔지만 아파트의 화단에 피여있는 꽃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렇게 끈끈하게 살아숨쉬는 것은 아닐지 다시한번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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