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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

[일상생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이시여 굽어살펴보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이시여 굽어살펴보소서!!!!

 

언제적 내린눈이 아직도 녹지않고 집 앞 동춘당 공원을 하얗게 덮고 있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구제역 발병과 AI, 그리고 신종플루 등등등

그리고 삼한사온을 간단하게 밀어부친 한파......  명절은 코앞인데 그로 말미암은 물가 로켓 발사!!




전국적인 재앙으로까지 불리울 정도이며

과로로 인한 사고,  살처분에 관여한 공무원과 피해 농가에 정신과 진료까지 추진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하는 현실에 까지 직면하니

정말 어디까지 갈 것인지 이만저만의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젠 제발 그만 그쳐주기를 소망하며

 

액운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척주동해비문'을 올립니다.

 

 

지난 여름 대전 선사박물관에서 조선시대 대전지역의  실경을 그린 '무수동도'와 최고의 전서체 대가로 꼽히는 허목의 전서체 친필  '척주동해비문을 첫 공개한다'는 보도문을 보고 선사박물관을 갔습니다.

 

물론 그 외 많은 자료가 전시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류몽인(1559~1623)의 고전수필 '어우야담', 

조선 중기 재산을 분배하는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도 있었지요.

 

대전과 호서지역 명문가인 안동 권씨 유회당가와 은진 송씨 추파공파, 고흥 류씨 검상공파 문중이 방대한 규모의 귀중한 유물과 서적 등을 대전 선사박물관에 기증을 한 것이랍니다.

 

안동 권씨 유회당가는 대전시 중구 무수동 보문산 자락에 이주한 지 300년이 넘는 유서깊은 문중으로, 탄옹 권시(1604~1672), 유회당 권이진(權以鎭, 1668~1734) 등 유명한 유학자를 배출했으며   무수도동과 척주동해비문을 기탁했습니다.




종가의 후손들과 뒤에는 각 언론사의 취재진들.....  (취재경쟁....  아주 굉장했죠.)




허목의 친필 '척주동해비문'

 

 

척주동해비문은 조선 현종 때 삼척 부사 허목이 풍랑을 막기 위해 세운 비문으로 척주동해비는 현재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정라진 육향산정에 있습니다.

 

비문에는 척주동해비의 위치와 비를 세우게 된 이유 등이 기록돼 있으며 앞부분은 훼손되고 비문 중간부문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대전선사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동해비문 전문이 수록된 '동해비첩'이 소장돼 있으나 이번에 발견된 비문은 제본이 돼 있지 않은 허목의 또다른 친필본으로, 초고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가치가 높다고 설명하며

 

"안동 권씨 유회당가 문중의 유학자 탄옹 권시가 허목과 친분이 깊어 비문을 보유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척주동해비는 조수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는 뜻의 '퇴조비(退潮碑)'라고 불리기도 하며 이 같은 주술성 때문에 액운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학예연구사 김은선님은 설명했습니다.




조선시대 대전 실경을 그린 '무수동도(대전시 유형문화재 44)'  

세세하게 사진을 찍어 왔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참으로 아쉬운 작품입니다.





번역된 책이 있으면 보고싶은 책.  류몽인(1559~1623)의 고전 수필 '어우야담'




인터뷰 하는 염홍철 시장님과 안동권씨 유회당가 후손 권경원님

때마침 대전시 향토사료관 2011 1월의 문화재 전시는 '척주동해비문'입니다.




척주동해비문 陟州東海碑文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의 친필본으로 그가 삼척도호부사로 부임했을 때 바닷물의 피해가 잦은 이곳을 위하여 1661년에 세운 척주동해비의 비문이며 동양 최고의 전서체 대가인 허목 고전(古篆)의 전형이다.

앞부분이 훼손되었지만陟州東海碑로 시작되며 척주의 위치를 적은 21자와 허목의 관명과 아호를 적은 9자의두서(頭序)’를 먼저 적고 있다. 1709년에 다시 제작된 현재의 비보다 원형에 가까우며, 비문의 중간부분까지만 남아있어 하단부가 결실되었다.

 

이 유물은 2010년에 안동권씨 유회당가의 권태원님이 기탁하였다.

 

 

陟州東海碑

洲古悉直 氏之地在 濊墟南去 京都七百 里東臨大

都護府史 孔岩 許穆

瀛海漭瀁 百川朝宗 其大無窮

東北沙海 無潮無汐 號爲大澤

積水稽天 渤潏汪濊 (海動有曀)

 

척주동해비

이 고을은 옛날 실직국(悉直國)의 땅으로 예국(濊國)의 옛 터 남쪽에 있고, 서울과의 거리는 칠백리이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닿았다.

도호부사 공암 허목이 쓰다

큰 바다 가이없어 온갖 냇물이 흘러드니 그 큼이 끝이 없네

동북쪽 사해(沙海)여서 밀물썰물 없으므로 대택이라 이름 했네

파란 물 하늘에 닿아 출렁댐이 넓고도 아득하니 (바다가 움직이고 구름이 끼었네.)

 

                                                                 -  대전 향토사료관 전시품

 

 

 

 

참고>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육향산 산정에 있는

높이 175, 넓이 76, 두께 23㎝의 큰 비석으로서

조선 현종 때의 정치가이며 대학자인 미수() 허목(許穆 : 1595∼1682)선생이 세운 비석이다.

1660(현종 원년)에 허목이 삼척 부사로 부임할 당시,

동해에는 조석간만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다.

조수가 삼척 시내까지 올라와 여름철 홍수 때는 강하구가 막히고 오십천이 범람하여

주민들의 피해가 심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은

신비한 뜻이 담긴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독창적인 전서체로 써서

1661<을축> 3월 정라진(汀羅津) 앞의 만리도(萬里島)에 비를 세우니

바다가 조용해 지고,거친 풍랑도 이 신비로운 문장의 위력에 감동되어

바다그 후로 조수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조수를 물리치는 신비한 비석이라 하여 일명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불리워졌는데,

원래의 비는 1707, 풍랑에 파손되어, 1709년에 재차 건립한 것이 지금의 비이다

 

                                              -  동해시청 서성남님께서 자료 보내주셨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한숨소리 들리거든

이제 그만 굽어 살펴 보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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