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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산(山)ㆍ천(川)

장동 산디마을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곳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의 번호는 74.

버스 안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회덕 쪽을 지나던 버스가 외진 길을 들어서더니 어느새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에 미군부대(CAMP AMES)가 있던 장동을 지나서도 한참을 들어갔습니다. 여기가 대전이 맞나 싶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강원도 산간마을로 향하는 것만 같습니다. 74번 버스에서 내린 승객은, 필자 단 한 명뿐. 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가야겠습니다.

 

<장동 산디마을탑제를 알리는 안내표지판>

 

<1973년에 세운 장동마을 새마을 표지석>

대전 계족산 뒤편 깊은 곳에 장동 산디마을이라는 산간마을이 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두 개의 돌탑(돌탑은 당숲과 함께 조성되어 조산으로, 경남지방에서는 막돌탑으로 부르기도 함)이 있는데 도로 왼편에 1, 그 오른편으로 개울을 사이에 두고 1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각기 명칭이 있죠. 왼편의 것이 할아버지 탑, 오른편의 것이 할머니 탑. 이 돌탑이, 바로 장동 산디마을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도로 왼편에 위치한 할아버지 탑>
<도로 오른편 개울건너에 위치한 할머니 탑>

두 개의 돌탑(할아버지, 할머니 탑)에는 볏짚으로 된 금줄이 둘러쳐 있습니다.

오래 전 산디마을에 모인 사람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을 모시기로 뜻을 모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뒤에 동신이 안주하는 거목이나 바위, 당집, 선돌, 막돌탑 중에서 선택”(김봉우, 경남의 막돌탑과 선돌, 집문당, 2000. 16)했습니다. 이곳 산디마을 사람들은 마음속에 소망을 품은 채 산야와 개울 주변에서 가장 알맞은 돌들을 골랐으리라.

 

<정면에서 본 할아버지 탑>

그런데 두 개의 돌탑은 왜 마을 초입의 개울가에 놓여있는 걸까요?

그 옛날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 벌집형국의 출입처에 탑을 쌓고 나무를 심어 이중으로 비보하여 수구막이”(강성복, 박종익, 장동산디마을탑제, 대전광역시, 2012. 65)를 했습니다. 돌탑은 수구막이의 책무를 지녔습니다. 수구(水口)막이란, “흐르는 물이 산속으로 멀리 돌아가 하류가 보이지 아니하게 만든 형세, 나무를 심거나 산을 만들기도 한 것”(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지명의 지리학, 푸른길, 2008. 201)입니다. 수구의 역할은 물의 흐름처럼, “복락과 번영, 다산, 풍요 등 상서로운 기운이 함께”(이도원, 전통마을 경관요소들의 생태적 의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49)흐르고, 때로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액을 막아내는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그래서 산디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길과 개울의 시작점에 돌탑을 쌓아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마을과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자 애썼을 겁니다.

 

돌탑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나뉜 것은 전통적인 음양의 세계관을 따른 것입니다.

돌탑은 물론 돌장승, 선돌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전국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광경이죠.

산디마을에서는 매년 음력정월 14일 밤이 되면 어김없이 산신제와 탑제를 지내는데, 탑제의 성격을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병마와 재액을 막고 길목을 지키는 거리제(거리는 마을입구를 의미)”(김계연, 박선애, 한국의 마을신앙 , 현장조사 보고서, 국립민속박물관, 2007. 202)로 보기도 합니다. 이날 할아버지 탑(상단에는 남성을 상징하는 꼭지돌이 서 있다)과 할머니 탑 사이에 오쟁이(짚으로 만든 작은 섬)로 다리를 놓아 서로 왕래하게 한다. (할아버지 신과 할머니 신이) 교접하면 마을이 더 풍요로워진다”(강성복, 박종익, 장동산디마을탑제, 대전광역시, 2012. 117쪽에서 인용. 괄호 속 내용은 필자가 추가한 내용)고 믿기 때문이죠.

돌탑을 감싸고 있는 금줄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금기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산디마을 돌탑의 금줄은 거리제에서 사용한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는데, 이 모든 근본적인 이유가 단순히 잡귀, 잡인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스러운 상징을 부여하는 금줄이기에 인위적으로 제거하지”(이필영, 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문화 이야기, 웅진닷컴, 2000. 73)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산디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들여 돌들을 하나하나 골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그 돌들이 모여 돌탑이 된 어느 때부터 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들었을 겁니다. 그 신령함을 믿어왔던 이들은 알고 있었을 것만 같습니다. 오랜 세월의 바람과 빗물과 눈이 스며들어 검은색이 감도는 돌탑, 그 안에 여전히 탑신이 존재해 왔음을. 마을 어귀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