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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산(山)ㆍ천(川)

말하는 나무들, 노거수(老巨樹)

대전에는,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이 많습니다.

그 나무들은 대전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곁에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나무들을, 늙고 나이 많은 나무노거수라 합니다. 아마도 노거수들은 무수한 사연들을 품고 있을 겁니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 나무에 얽힌 사연들, 나무에 담긴 의미들은 무엇일까요?

한 번 가만히 귀 기울여 보세요. 대전을 지켜온 나무들의 속사임을.

괴곡동 느티나무

괴곡동 마을의 느티나무는 700살로 대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생명체입니다. 괴곡동의()’라는 한자는 느티나무(또는 회화나무)를 가리킵니다. 이름에서 보듯, 마을과 느티나무가 이미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700년 째 살아왔을 겁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 어귀에 서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항상 마을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마을로 들어오고 나가며 한번쯤은 거쳐야 하는 길목에서 사람들을 반겼죠. 외지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타지에서 살다가 귀향할 때 느티나무는 등대의 불빛처럼 신호를 보내 길을 안내했습니다.“자 여기가 당신의 가족들이 사는 집이며 당신이 태어난 고향입니다라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한자리에 모여 쉬는 터전이었고, 아이들의 친근한 놀이터였고, 마을의 잡다한 소식들까지 모여들었다가 사방으로 퍼지는 교차점이었습니다.

바로 그 모습이 괴곡동 느티나무입니다.

사람들은 느티나무 앞에서 여러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잘 지어 풍요로운 수확을 하게 해달라는, 자식을 얻게 해달라는, 마을의 질병과 액운을 막아달라는. 이를 말해주듯, 지금도 괴곡동 느티나무 앞에서는 매년 음력 칠월칠석에 목신제가 열립니다.  

목신제, 동제, 당산제, 어느 이름으로 지칭하든, 이것은 마을사람들의 동질감 속에서 이루어지는 마을의 가장 큰 행사이자 인간과 신 사이를 잇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한 탓에우주목(宇宙木)’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나무들을 일러 흔히당산나무라 불렀고, 때로는도당나무로 부르기도 했죠.

바로 이 모습이 괴곡동 느티나무입니다.

더퍼리 당산나무

대전 동구에는더퍼리 서낭당이 영겁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속인들 사이에서는 대전에서 지기(地氣)가 가장 강한 곳이라 하여 반드시 치성을 드리는 서낭당으로 알려져 있고, 할미신이 깃들여 있는 신목을 모시고 있습니다. 최준식의 한국의 풍속 민간신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신목을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신성한 통로로 여겨왔다고 합니다.

오래 전 더퍼리 사람들은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나무를 심고 그 둘레에 돌을 쌓은 뒤에 오색천을 가지마다 걸었습니다. 오며가며 돌을 던지고 쌓아 올리며 자신과 가족의 운과 무병장수를 빌거나 매해 당주(堂主)의 주관 아래에 서낭제를 지내며 마을의 편안함을 기원했습니다.

동구 가양동 남간정사(우암사적공원)안으로 들어가, 덕포루 앞를 지나면 작은 후문이 나옵니다. 그곳을 빠져나와 10분 남짓 걸으면 더퍼리 서낭당이 나옵니다. 마치 오가는 이들을 기다리는 듯이 더퍼리의 노거수가 보입니다.

그리고 남간정사의 배롱나무

우암 송시열 선생의 남간정사 한켠에는 우암 선생이 심었다고 하는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배롱나무를 좋아했습니다. 배롱나무의 꽃은 여름철 무더위와 장맛비에도 계속해서 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롱나무 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지조와 강직함을 배웠다고 합니다. 우암 선생의 마음 또한 이러하지 않았을까요.

대전을 지켜준 나무들을 위하여

늙고 나이 많은 나무 노거수에는 그 긴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삶과 의식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노거수들을 찾아 가보세요. 그 속삭임이, 나무들의 소리들이 들려올 겁니다. 느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