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통생활식물 展. "추억, 꽃으로 피어나다"
달콤한 꽃향기에 흠뻑 취했던 5월을 보내고, 싱그러움이 초록초록 물들어 가는 6월. 우리의 일상이 늘 꽃과 함께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 우리 고유의 전통 꽃으로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꽃으로 추억을 더듬고 그 추억이 향기로운 꽃으로 새롭게 피어난 한밭수목원엔 수천 가지 종류의 꽃들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옛 어르신들이 농사일에 사용하거나 나무를 할 때 사용했던 지게엔 예쁜 초화들이 가득!
도심의 한 복판을 예쁘게 장식한 꽃들을 마주하니 두 눈을 어디다 초점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발길 닿는 곳마다 꽃들의 천국입니다.
한밭수목원 서원을 들어서면 어릴 적 추억이 스멀스멀 돋게끔 아담하게 꾸며진 공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정겨운 풍경이네요.
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 초가지붕. 어깨 위로 힘껏 도리깨를 올려 타작을 하시는 아버지! 연신 키를 올렸다 내렸다 곡식을 까불고 계시는 어머니! 고향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한낮의 도시 색깔이 이렇게 이쁠수가!!
연둣빛으로 한껏 치장한 낙우송의 싱그러움에 반하고, 그윽한 장미향에 또 한 번 넋을 잃습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정신없이 바빴던 하루가 이곳에 서니 절로 마음의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되는 듯합니다.
상쾌한 공기와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 소리 들으며 그 옛날 추억 여행을 떠나 봅니다. 빨간 열매가 빙글빙글 돌며 바람에 나부끼는 단풍나무 길 양쪽을 시작으로 우리의 전통식물 초화류, 약용식물 등 우리가 늘 보고 먹었던 식물들이 전시되어 향기까지 내뿜고 있습니다.
어른에겐 '추억의 공간' 아이들에겐 '교육의 장'
한밭수목원 서원과 동원에서 매년 치뤄지는 '우리 전통생활식물 展은 어른에겐 '추억의 공간'이요, 아이에겐 '교육의 장'입니다.
푸른 잔디광장에 길게 줄지어선 우리 전통 덩굴식물들. '나는 이런 종류의 식물입니다'라는 이름표를 달고 따가운 햇살에도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그동안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해 알쏭달쏭했던 식물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흥미롭습니다.
향기가 좋기로 이름난 분꽃. 까만 씨앗에 들어 있는 가루를 화장할 때 발랐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홍색, 황색, 백색 등 다양한 색깔로 꽃을 피웁니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해질 녘에 피어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퍼질 때쯤 꽃잎이 다시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한낮에는 활짝 핀 꽃을 볼 수가 없으며, 여름 내내 피고 지는 꽃으로 오후 네 시에 피었다가 밤을 새우고 아침이 지나 해가 뜨면 서서히 꽃을 오므리기 때문에 'four-o´clock Flower(포어컬락 플라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양이가 좋아해서 고양이 밥으로 지칭하는 '괭이밥'은 노란색 꽃을 피우는데, 자주색 꽃을 피운다 하여 '자주 꽹이'라 부르지요.
세 잎은 완전한 하트모양(♥)을 하고 있고 세 잎이 합쳐지면 예쁜 꽃 모양이 됩니다. 괭이밥 한 잎 떼서 아이들 얼굴에 붙여주면 참 좋아하는 꽃입니다. 식용이며 샐러드에 이용하기도 하는데 레몬 같은 상큼한 맛이 식욕을 돋구 줍니다.
꽃 모양이 접시를 닮아 접시꽃이라 이름 붙여진 꽃. 노란 꽃술이 연분홍 꽃잎과 조화를 이뤄 고운 색깔을 연출합니다. 화려한 자태와 달리 슬픈 사연이 생각나는 꽃인데요. 도종환 시인의 대표 詩 '접시꽃 당신'을 연상시키는 꽃이어서 그런 걸까요?
풍요, 다산, 애절한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접시꽃은 꽃이 아래에서 위로 차례로 피어 올라가기 때문에 벼슬이 점차 오른다는 뜻으로 여겨 선비의 정원에 많이 심는 꽃이라고 합니다.
와!! 거대한 터널이 떡^하니 눈앞에 펼쳐집니다. 마치 숲 궁전으로 들어서는 기분입니다.
식물의 줄기가 덩굴이거나, 덩굴손, 빨판을 이용하여 다른 나무 바위틈을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덩굴식물 터널입니다. 우리 꽃과 우리 곡식, 우리의 전통 식물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려서인지 한적한 숲길에 들어온 듯 한 착각마저 듭니다.
터널을 지나면 슬픈 사연에 비해 꽃이 너무 예쁜 트럼펫 모양을 닮은 능소화와 왕머루 덩굴, 인동덩굴이 또다른 향기로 맞아 줍니다.
키가 큰 곡식들 앞에 서니 농촌의 너른 들판에 서 있는듯한 기분입니다. 저렇게 예쁜 꽃이 담배꽃 이래!! 지나가던 젊은이들이 주고받는 말입니다.
백해무익 몸에 해로운 연분홍 꽃은 긴 나팔꽃을 연상시킵니다. 어릴 적 숨바꼭질하 놀았던 담배밭. 키가 커서 숨기가 좋아 유난히 담배밭에서 놀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부채만큼 잎이 커다랗게 자라면 잎은 모두 건조장으로 옮겨집니다. 늦여름까지 담배 대궁 꼭대기엔 분홍빛 꽃만 달랑 남았던 추억의 담배꽃 앞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참을 머물렀네요.
'사람에게 이로운 꽃'이란 이름으로 '잇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홍화'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꽃입니다. 옛날 시집갈 새색시의 이마에 찍었던 붉은 점(곤지)의 재료로도 사용됐고요. 꽃은 천연염료로도 사용한다고 해요.
처음엔 노란색 꽃이 피었다가 차츰 주황색으로 변하며 나중에는 붉은색으로 변하는 식물입니다.
족두리꽃이라고도 불리는 풍접초. 꽃 모양이 옛날 혼례식 때 머리에 쓰던 족두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요. 여름부터 늦가을 추울 때까지 끊임없이 피고 지는 꽃입니다. 물을 주거나 잎을 건드리면 특유의 향기가 나기도 합니다.
잡곡 중 다이어트 식품으로 많이 알려진 율무. 벼과의 식물로 먹어는 봤어도 실제로 보는 건 저도 처음이네요.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해서 체내 독소와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주기 때문에 곡류 중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먹고 입고, 편하게 누리는 것들이 바로 우리 전통생활식물에서 재료들이 나온다는 거. 새삼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왕관 모양의 호박이 다양한 색깔로 열린 관상용 호박으로 이름은 '십손이' 유기질 비료량을 조절해서 모양이나 크기를 자유롭게 키울 수 있다고 하네요. 여러 가지 재미있는 모양을 연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더해주는 식물입니다.
알록달록한 색을 가졌으며 혹같은 돌기가 10여 개나 되는 십손이. 느릿느릿 고향생각을 하며 보게 되는 즐거움이 있네요.
이쯤 해서 잠시 쉬어 갑니다. 복잡한 도시들에게 농촌의 정취를 느끼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보고, 숲 속에 온 것 같은 수목원의 상쾌함을 만끽하며 재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전통생활식물 展. 가족 친구 연인끼리 삼삼오오 맛있는 간식도 먹고 마주 보며 얘기꽃도 피울 수 있는 기회로 나들이 삼아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한 송이씩 핀 붉은 꽃들이 동자의 얼굴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동자꽃'. 긴 가지 끝에 빨간색 꽃이 한 송이씩 달려 피는데 앙증맞고 아름다운 색깔로 멀리서도 눈에 확 띕니다.
오른쪽 하얀꽃은 '샤스타데이지'라는 꽃으로 프랑스의 들국화와 동양의 섬 국화를 교배하여 만든 개량종인데요. 한 번 심어놓으면 다음 해에 또 자라는 꽃으로 여름에 길가나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가을에 피는 구절초와 비슷하게 생겨 헷갈리는 꽃입니다. 강원도 정선 백운산(하이원 하늘길)에는 매년 샤스타데이지 축제 열린다고 합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길쭉하고 울퉁불퉁한 열매가 달리는 채소입니다. 혈당조절에 효능이 있다 하여 약용으로 쓰임새가 많은 식물이죠. 약재로 이용할 땐 푸른 열매를 수확하지만 익으면 주홍빛으로 벌어져 빨간색 속이 훤히 보면 먹습니다.
과자가 귀하던 어릴 적엔 과일 대신 많이 따 먹었던 식물로 '유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여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푸른 열매로 요리에도 많이 이용되는 여주는 쓴맛을 가지며 이 성분이 우리 몸속 혈당치를 떨어뜨려 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고 합니다. 열매가 푸를 때 따서 말린 후 차로 마시는 약용식물입니다.
풍처럼 생긴 열매가 대롱대롱 달린 모습을 가진 신기한 이 식물의 이름은 풍선덩굴 또는 풍선초라고 부릅니다. 도라지꽃 마냥 손으로 터뜨리면 빵! 빵! 터지면서 소리를 낼 것 같은 풍선 모양의 열매가 달립니다. 열매 안에는 예쁜 하트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씨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안 비밀..
'층층이 부채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루피너스'는 콩과 식물입니다. 저도 자주 만나보지 못한 식물로 줄기는 직립으로 길게 자라며 털이 있습니다. 과다하게 사용된 농약과 다른 토양의 독성물질을 흡수하는 식물이라고 하네요.
길가나 공터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나팔꽃. 흰색, 붉은색, 자주색 등 여러 가지 빛깔로 피는 나팔꽃은 아침을 열어주는 꽃으로 꽃말은 '기쁜 소식'이라고 해요. 그래서 영어로는 morning glory. 매일 아침 나팔꽃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면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작고 귀여운 주홍색 통꽃에 하얀 꽃술이 매혹적인 둥근 잎 유홍초. '새깃 유홍초'라는 식물 따로 있는데 꽃은 같고 잎이 서로 다릅니다. 대부분의 여름꽃이 흰색인데 반해 핫한 주홍색을 자랑하는 유홍초의 꽃말은 "영원히 사랑스러운" "항상 사랑스러운"이라고 합니다.
가장 오래전부터 재배된 작물 중의 하나인 밀은 소맥(小麥)이라고도 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식용작물의 하나로 보리와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잘 안되기도 합니다.
6·25 전쟁 이후 밀가루가 수입되었고, 쌀이 귀했던 시절 밀가루로 만든 국수, 수제비 등 주식 대용으로 많이 먹었던 작물이 입니다. 특히 근래엔 쌀 소비가 많이 줄어들고 있고 대신 빵, 과자 등을 선호하여 밀가루의 소비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식은 밥인데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할 때 즐겨 썼던 밀짚모자가 바로 이 밀로 만든 거였네요.
추억! 꽃으로 피어나다.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아들을 따라나선 어머니. 평생 봐 온 꽃들보다 오늘 하루 눈에 담은 꽃들이 더 많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남겨 보는 아들. 내 자식 키우느라 꽃구경 한 번 제대로 못 시켜드렸는데 오늘서야 꽃길에서 추억을 남겨봅니다.
달콤한 꽃향기 찾아 꿀을 먹으러 날아온 나비. 소년의 눈이 반짝이며 나비를 따라다니느라 신났습니다. 매미채를 들고 꽃 주변을 수없이 돌고 돌아도 잡히지 않는 나비. 결국은 아빠가 나서 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즐겁고, 코는 점점 더 향기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수목원 숲길에서 내뿜는 건강한 피톤치드는 덤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는 이유도 있지만 우리의 전통식물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와 수많은 꽃들이 발산하는 향기 덕분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예년보다 더위가 빨리 찾아온 6월. 숨 가쁘게 살아가는 도시생활에선 이런 호사를 누려 본다는 게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전시기간 동안 동원 입구에서는 내 화분 만들기 체험과 봉숭아 물들이기 체험도 진행됐습니다.
일 년에 딱 한 번 우리 고유의 전통생활식물도 만나보고, 오랜만에 한밭수목원을 한 바퀴 돌며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본 시간이었습니다.
오른 하루로 인해 6월 한 달은 끄떡없이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