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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 있는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에 다녀왔습니다. 도착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제일 먼저 홍보관이 눈에 띄이는데요. 홍보관 입구에는 신채호 선생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어서 대전 시민의 한사람으로써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이곳 홍보관은 신채호 선생의 독립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과 업적, 일대기를 정리한 곳입니다. 나라사랑과 독립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죠. ​ 단채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는 기념물 제26호로, 1992년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ㄱ자형의 안채와 헛간을 복원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선비의 삶이 묻어나는 소박한 초가집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생가지 옆쪽으로는 신채호 선생의 동상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 이곳을 방문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단재 신채호 ..
2019. 2월 대전시정 핫뉴스(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아시안게임 공동유치 등) 2019 대전시정 핫뉴스! 1. 대전시 사상 최고 기부금(넥슨 100억원)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탄력 2. 대전여행 1000만 시대 대전방문의해 범시민추진위원회 출범 3. 충청권 4개 시도지사 2030 아시안게임 공동유치 4. 대전 교통지도 '확' 바뀐다- 도시철도 중심의 공공교통체계로 전환 5. 신·구 지하상가 28년만에 연결...360억 투입 중앙로프로젝트 시동
독립운동 100주년 대전의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흔적을 찾아서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에서 출생했고, 충청북도 청원에서 성장한 단재 신채호. 지금 그 생가지가 복원되어 있어서 그 흔적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단재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틀을 만든 사람으로,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우리의 역사를 많이 정립하기도 했죠. 지금은 행정구역상 동구에 속한 곳이지만 이 지역은 원래 대덕군으로 지역이 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단재는 1880년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나 구한말 독립협회에서 활동했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논설을 쓰며 친일파의 매국 행위를 비판했는데요. 단재는 대전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며 대전의 자부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재는 10여 세에 '통감(通鑑)'과 사서삼경을 읽고 시문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
단재 신채호 생가지 살랑살랑 봄나들이 호기심 탐방길 주말에 뭐하지? 주말에 집에서 구르기에 너무 아까운 직장인이거나, 에너지가 넘쳐 집안을 들쑤셔 놓는 아이들이 있거나, 아니, 뭐 그렇지는 않아도 집에만 있기엔 너무 아까운 '봄날'이니까. 주말엔 뭐하지?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됩니다. 가까운 산에나 갈까 하다 문득 아이들 아빠가 " 예전에 지나가다가 봤는데 대전에 신채호 생가지가 있더라구, 거기 한번 가볼까?"하고 제안합니다. "콜~!!" 어디든 좋다. 봄바람 쐬러 가자. 뻣뻣한 껍질을 뚫고 돋아나느라 애쓴 꽃들과 손톱만큼 자란 나뭇잎들을 봐줘야 이 봄에 대한 예의지. 그렇게 가볍게 떠난 주말 봄나들이랍니다. 와우~! 도심의 거리에는 벚꽃들이 이미 다 져 버렸는데 산에는 산벚꽃과 나무들의 새싹, 그리고 이름모를 꽃들로 이제 한창입니다. 신채호 생가지는 중구..
신채호선생의 생가 신채호선생의 생가 ***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 위치한 신채호선생의 생가는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92년 여름 생가 터에 대한 발굴조사와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여 신채호의 생가가 복원되었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만나게 되는 단재재입니다. 지금은 신채호생가를 관리하는 곳으로 사용되는 듯 하네요.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이 들면 참 아름답겠지요. 그 옆의 쉼터 그늘이 져 쉬기 참 좋네요. 잔디 깎은지 얼마 안 되었나봅니다. 걸을때마다 풀 냄새가 코 끝을 스치니 기분이 참 좋네요. 잘 다듬어진 공원입니다. 이 곳 벤치도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네요. 천이 흐르는 또랑일텐데 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비가 내린지 한참이 되었군요. 잘 다듬어진 잔디너머로 신채호 생가가 한 눈에..
[대전여행]/대전의 소중한 문화재 - 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단재 신채호 1880(고종 17)∼1936. 한말·일제강점기의 역사가·언론인·독립운동가 가계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열혈생(熱血生)·한놈·검심(劍心)·적심(赤心)·연시몽인(燕市夢人), 가명은 유맹원(劉孟源). 대전 산내에서 출생하였고, 충청북도 청원에서 성장하였다. 신숙주의 후예로 아버지는 신광식(申光植)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한말의 항일독립투사이자 언론인이요 문필가이자 사학자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가 태어난 곳이 어남동 도리미마을이다. 신채호는 1880년 12월 8일(음력 11월 7일) 외가의 안동권씨댁 마을인 이곳(당시는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대전의 중구여행,어디까지 가봤니? 대전의 중구여행, 어디까지 가봤니? [무수천하마을, 유회당,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 2010 11. 20 이번 탐방에서 생소했던 대전의 숨겨진 역사유적으로 다녀았습니다. 무수천하마을(하늘아래 근심없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농촌테마마을로 지정돼 있습니다. 마을안에 안동권씨 유회당종가와 여경암, 거업제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http://musu.go.2vil.org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대전 오월드(동물월)와 연계콧스로 다녀오기엔 알맞은 코스죠. 대전의 유적들이 다 비슷한 조건인데 좀 더 자세한 설명과 관리가 이뤄진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유회당의 입구입니다. 권이진 선생님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소에 시묘소로 지은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제사로 올리고 모시기 위해서죠. 일단..
대전시 중구에서 즐기는 한나절의 즐거움. 초입의 겨울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고 대전의 가까운 곳에서 가볍게 산책할 만한 곳을 찾는 사람에게 대전광역시 중구의 두 곳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바로 무수천하마을과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입니다. 먼저, 무수천하마을입니다. 근심이 없다는 뜻의 무수(無愁)에서 알수 있듯이 마을 대대로 근심걱정 없이 살아온 동네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2006년에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어 무공해부추와 유기농 자운영쌀 등 친환경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유회당(有懷堂)이라는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가 위치해 있습니다. 유회당은 조선 영조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1668~1734) 선생이 부모의 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독서와 교육을 하기 위해 지은 건물물입니다. 유회(有懷)..
한국의 독립운동에 혼신을 다바친 신채호 선생의 생가 한국의 독립운동에 일생을 다바친 선생의 어린시절이 서린곳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 여행날짜 : 2010년 11월 20일 위치 :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찾아가는 길 : 안영IC → 대둔산길 → 오월드 방면 산서길 → 느네미길 → 생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입니다. 지난 1992년 여름 생가 터에 대한 발굴조사와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신채호 생가를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사학자이자 언론인이며, 항일독립운동가로써, 1880년 12월8일 지금의 도리미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8살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 후 할아버지가 사시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마을로 옮겨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