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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훈

장동 산디마을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곳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의 번호는 74번. 버스 안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회덕 쪽을 지나던 버스가 외진 길을 들어서더니 어느새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에 미군부대(CAMP AMES)가 있던 장동을 지나서도 한참을 들어갔습니다. 여기가 대전이 맞나 싶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강원도 산간마을로 향하는 것만 같습니다. 74번 버스에서 내린 승객은, 필자 단 한 명뿐. 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가야겠습니다. 대전 계족산 뒤편 깊은 곳에 ‘장동 산디마을’이라는 산간마을이 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두 개의 돌탑(돌탑은 당숲과 함께 조성되어 조산으로, 경남지방에서는 막돌탑으로 부르기도 함)이 있는데 도로 왼편에 1기, 그 오른편으로 개울을 사이에 두고 1..
유성온천에 관한 6개의 장면: 1922년-1948년 유성온천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과 같은 명성의 토대는 20세기 일제 강점기부터다. 불행했던 이 시기, 대전은 일제가 식민도시로 건설한 도시 중에 하나로 탄생된다.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유성온천이다. 근대 유성온천을 보여주는 6개의 장면 속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역사의 단면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장면 1. 공주갑부 김갑순 유성온천의 개발에는 친일파 ‘공주갑부 김갑순’을 빼놓을 수가 없다. 대전에서 유성온천까지 운행하는 차량 노선이 있었는데 그가 소유한 김갑순 자동차부(金甲淳 自動車部)소속이었다. 1922년 무렵이 되면 유성온천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때 김갑순은 “유성온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주주”(동아일보 1922년 7월 9일자)가 된다. 그..
모던걸, 모던뽀이! 대전의 백화점과 극장을 거닐다 1930년대 대전역을 중심으로 한 대전시내 본정통. 밤이 되자 화려한 불빛들이 새로 들어선 도심의 건물을 일제히 밝혔다. 그곳은 미나카이 백화점과 대전극장이었다. 그 백화점과 극장 안팎으로 신식 남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단발과 짙은 화장, 스커트나 치마 차림의 모던걸(moderngirl)이었고, 양복과 맥고모자, 한 손에는 지팡이를 잡은 모던뽀이(modernboy)였다. 모던걸과 모던뽀이가 대전의 백화점과 극장을 거닐고, 즐기고 있었다. 대전 최초의 근대식 백화점, 미나카이 백화점의 모습을 발굴하다 1930년 대 중반 무렵, 조선의 경성에는 일본 유수의 백화점들이 화려한 외형을 뽐내며 장안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소유한 백화점으로는 미쓰코시(三越), 조지아(丁子屋), 히리타..
대전 최초의 호텔은 자유헌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나온 수많은 신문들을 보면, 당시 대전의 풍경,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20년부터 1949년까지 발행된 신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전의 근대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겁니다. 화려함과 아픈 풍경이 동시에 스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과거겠죠. 자유헌, 대전 최초의 호텔 그리고 양식당 1912년 부산 철도호텔을 기점으로 일본 호텔들이 하나둘 개업을 합니다. 이때 생긴 호텔들은 대부분 열차역 앞에 있어, 역전 호텔이라 불렀습니다. 1920년대 중반 일본인이 세운 호텔이 대전에도 들어섰습니다. 위치는 대전역 앞, 호텔의 명칭은 ‘자유헌(自由軒, 지유켄)’. 자유헌은 3층으로 된 벽돌건물로, 호텔이자 서양요리를 제공하는 경양식과 일본인들의 지역 행사가 열리는 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