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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가까운 책방, 대전 유일 그래픽노블 전문 서점

동네 책방, 독립서점, 동네 서점. 붙여지는 이름도 다양하고, 그 공간 내 책들의 세계도 알록달록합니다. 책을 사려는 이들로 매일 문전성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각각의 책방이 지닌 정체성에 그곳을 찾는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지역에 살아남아 있는 그 작은 공간들. 대전 곳곳에도 독립 책방이 있습니다. 공간을 수놓은 책들 속 내밀한 사연을 읽어내듯 들려주고 싶은 대전 독립 책방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인터뷰 기반의 연재기사입니다. -권순지

ⓒ가까운책방

거침없는 걸음으로 공간에 들어서기보다는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떼었을 때 구석구석 제자리를 찾아 내려앉은 책들이 들여다보이는 곳. 대흥동의 작은 공간은 버려지지 않고 책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방까지 운영하게 되었다며 거리낌 없이 말하는 '가까운 책방' 김신일 대표. 책방 운영자이기 전에 목회자이기도 한, 좀처럼 겹쳐서 볼 수 없는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

ⓒ가까운책방

2017년 11월 처음 문을 연 가까운 책방은 그래픽노블 전문 서점으로는 대전에서 유일합니다. 대형서점에서 큐레이션 하지 않는 다양한 그래픽노블을 주연으로 두고, 소설이나 에세이, 시집 등도 주변에 자리합니다. 삶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작가의 다양한 예술적 언어에 모두 애정이 간다는 책방 운영자의 이야기에 눈과 귀가 함께 열렸습니다.

ⓒ가까운책방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등의 어린이 교양 월간지에 실린 만화를 챙겨보고 다음 호를 기다렸던 어릴 적 추억을 돌이켜보면 만화는 흥밋거리였다는 책방 운영자. 이후 그래픽노블을 만나면서 그림과 결합한 작가의 철학과 세계관이 담긴 기록에 빠져들게 되었다는데요.

 '제시이야기' 독립운동가부부의 육아일기 ⓒ가까운책방

 '그해 봄'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이야기 ⓒ가까운책방

책방 운영자는 공간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래픽노블 서적을 두고 ‘착하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사회 참여적인’ 그런 착한 만화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자신의 시야가 확장되었다고 말이죠.

덕분에 목회 활동을 하면서도 근현대사나 사회이슈를 다루고 있는 만화를 매개로, 현 사회문제에 관해 청년들과 소통하는 것이 조금은 더 편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 ⓒ가까운책방

‘그래픽노블’이란 용어는 본래 ‘만화’에 대한 코믹적 편견을 깨기 위한 시도였고, 마블 코믹스에서 나온 히어로물들이 고급 브랜드화된 그래픽노블 장르의 힘을 빌어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림과 소설의 중간 형태라 칭하는 것. 책방 운영자는 그래픽노블에 대해 ‘그림소설’이라는 다소 친숙한 용어로 접근할 수 있으며 ‘스토리가 있는 작가주의 만화’라는 매력에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199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래픽 노블: 독일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의 '쥐' ⓒ가까운책방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아하는 작가도 생기고… 마치 전작주의처럼, 그 사람이 출판한 모든 이야기는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요.”

ⓒ가까운책방

바람이 있다면 월세만 나와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공간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쉬지 않고 벌였습니다.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을 통해서는 ‘시’와 ‘문학 영상’ 강좌를 했고, 그래픽노블을 주제로 중학교 자유학기제에서 두드림 독서 프로그램 강좌도 진행했습니다. 청소년 책 읽기 소모임을 통해서는 청소년들과 8주 동안 문학, 비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4권의 책을 읽기도 하였습니다.

ⓒ가까운책방

“유럽에 있는 작은 책방들이 오랜 세월 유지해올 수 있는 것은, 그 사회가 책방을 지역의 사회·문화적 자산으로 본다는 이유죠. 사실 그건 돈이 드는 일이거든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고요. 우리나라도 지역마다의 서점, 작은 책방들이 문 닫지 않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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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그 가까운 것들의 중간에서, 책방은 그렇게 1년을 넘기며 불을 밝혔습니다. 다소 흔들릴지언정 담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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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 운동 100주년 기획으로 선정한 그래픽노블 작가 두 분을 가까운 책방에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던 독립운동가 부부가 번갈아가며 쓴 육아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시 이야기>의 박건웅 작가. 그리고 위안부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담은 <풀>의 김금숙 작가.

‘역사는 그 시간을 기억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존재한다.’

책 '제시 이야기'의 한 추천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기록들의 존재를 알리는 일, 역사가 현세대와 분리되지 않는 일. 여기 가까운 책방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