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전일상/대전사람들

자판기커피숍 리더 박정훈! 음악과 복합문화공간 대동단결 이야기



누군가 어떤 사람을 만나 알고 싶어지는 과정, 그 숱한 과정을 무심히 지나지 못하고 면밀히 들여다 봅니다. 결국엔, 그 사람을 더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기록하고야 마는. 수많은 생명체 중 '사람'이 갖고 있는 무한한 이야기와 그 매력을 가장 사랑하는 기록주의자가 만난 대전청년. 고집있는 자신만의 분야를 가진 그들 삶의 기록을 인터뷰를 통해 자유로이 이어가고자 합니다.[권순지]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그 흔적도 좋아하는 거죠.”

▲자판기커피숍 리더, 유니크디자인과 대동단결의 대표인 박정훈씨

 

대전을 대표하는 인디밴드 자판기커피숍의 리더 박정훈. 그는 자타 공인 수집광입니다. 다만 자신만의 고유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에 한해서. 아주 어릴 때 봤던 책, 가지고 놀던 추억의 장난감, 공기놀이, 수첩, 오락기 등의 다양한 소품들은 그의 취향을 말해주는 듯 한결같이 빈티지 감수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익숙하게 숨 쉬듯 노래하는 음성과 멜로디에도 온전히 그 감성이 녹아있습니다.

 

▲공간•빈티지•쉼터 ⓒ 대동단결

 

그를 대동 산 1번지 피리 부는 사나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의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자판기커피숍의 리더만이 그를 수식하는 전부가 아니죠.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간판•인테리어 디자인 및 시공 일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가 작업하는 공간에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조금은 특별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그의 아지트를, 찾는 이들 모두의 아지트가 될 수 있도록 개방했기 때문이죠. 이름은 '대동단결'. 오래된 공간에 특유의 그 향수를 남기고 독특함을 불어넣은 박정훈 대표를 만났습니다.

▲공간•빈티지•쉼터 ⓒ 대동단결

대동산1번지 -자판기커피숍

흐리게 눈을 뜨면 펼쳐진 조명의 노래
바람 전해다주는 지혜로운 달의 이야기들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보자

풍차가 돌아가는 여기는 대동 산 1번지
작은 골목 골목 마다 펼쳐진 칼레이도스코프
별을 따라 사진을 찍어보자

세상에 에펠탑 하나만이
세상을 알려주진 않아
우주에 지구에 이곳에
대동 산 1번지에 놀러와요

▲공간•빈티지•쉼터 ⓒ 대동단결

 

그가 있는 곳은 대동의 작은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가고 평지로부터 한참은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곳. 정말 그의 우스갯소리 같은 말마따나 노래 가사대로 흘러 들어온 걸까요. 2011년도 만들어진 자판기 커피숍 1집 앨범엔 ‘대동 산 1번지’라는 곡이 있습니다. 대동과 그의 직접적인 첫 번째 인연은 노래에서 기인했습니다.

“가사가 너무 술술 써지더라고요. 전 멤버랑 같이 산에 올라가서 뚝딱뚝딱 가사까지 20분 만에 만들었거든요.”

▲공간•빈티지•쉼터 ⓒ 대동단결

 

대동 산 1번지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동을 처음 만난 2011년. 그 후 정말로 대동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며 말하는 그의 첫 작업실은 대흥동. 8년을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했고, 그 공간을 아꼈다는 그가 2017년 우연히 대동의 오래된 집을 발견하고 뚝딱뚝딱 고쳐 머물게 된 사연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아버지가 대전극장에서 근무하시던 어린시절 영사실에서 영화를 보다가 돈을 받고 달려갔던 오락실이 이후 작업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자마자 옛날 할머니 댁 같은 품을 느꼈던 대동단결의 공간도.

 

▲빈티지 소품에 옛 학창시절 떠올리게 하는 놀잇감 공기까지 ⓒ 대동단결

“제 추억에 관련된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곳에 제가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여기도 다른 건 모르겠는데, 들어왔을 때 어떤 위화감 없이 편안해요. 가끔 누워서 잠도 자거든요. 옛날 할머니 댁에 와서 잠을 자는 것처럼. 오시는 손님들도 그걸 느끼고 계시더라고요.”

▲빈티지감성 ⓒ 대동단결

 

1956년도 신문지가 벽에 붙어 있던, 6.25를 겪었을 가족이 살던 집. 정확히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혼자 사시던 집주인 할머니가 10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집. 다시 사람이 들어올 거라는 희망이 사라지고 그저 풍화의 과정을 기다리던 그 곳. 이제 다시 그 곳에 사람이 삽니다.

모든 걸 감수하고 왔지만 수리할 때부터 그런 고생이 없었다고. 처음, 모두가 반대한 공간이 이젠 모두에게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주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빈티지감성 ⓒ 대동단결

사이다 -자판기커피숍

나 어렸을 때 마셨던
네가 너무 좋아서
소풍날도 가져갔던
달콤한 사이다

커피숍에 가서도
나는 아직 시켜요
니가 제일 좋아하던
달콤한 사이다

“그 분들이 왜 여길 올까 고민을 해봤더니, 모두 다 집에서 내다 버린 것들 있잖아요. 집에서 내다 버린 것들인데 그것들을 보러 오는 거잖아요.”

버릴 수 없이 소중한 것들 ⓒ 대동단결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 더 이상 쓰임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얼마 전 처분했습니다. 물건들은 나보다 더 잘 쓸 것 같은 이에게 가기도 했고, 더 이상 누구에게도 갈 수 없을 만큼 수명이 다한 것들은 사람 곁을 떠나보냈습니다. 사실 오래된 물건을 잘 버리는 편은 아닙니다.

방금 전까지 오래되고 낡은 물건을 버렸다고 했으면서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둘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시간을 꽤 많이 함께 보낸 것들에겐 어느 정도의 미련은 있고, 그 미련을 추억이라 부르죠. 사람뿐만이 아닌 물건에게도 정을 주는 사람에겐 추억을 곁에 둘 것인지 말 것인지의 갈등도 늘 존재합니다. 

 

아지트 ⓒ 대동단결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추억도 폐기하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죠. 현실적으로 폐기될지라도 추억의 잔상은 어차피 계속 남아 있다는 전제하에 갈등을 중단하기도 하고, 계속된 갈등 속에서 결국 물건을 남기는 선택도 있습니다. 그 선택의 이유엔 늘 사람이 있고,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아지트 ⓒ 대동단결

 

대동단결의 빈티지 감성엔 그리움이 있습니다. 추억이 있는 이들에겐 이곳이 아지트가 됩니다.

 

아지트 ⓒ 대동단결


캐치볼 -자판기 커피숍

그날은 너무도 더웠지
난 집에 돌아와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고 있었는데

평소와 다르던 그 공기
아버지는 잠시 누워있다가
뒤로 돌아눕기전
마지막 한 마디를 들려주셨네

너와 캐치볼이 하고 싶구나
캐치볼이 하고 싶구나
해준 것 너무 없어 아무말도
아빠에게 할 수 없었죠

꿈에 들어도 아픈 그 말을
오늘도 생각했어요
너와 캐치볼이 하고 싶구나
난 아무말도 못했죠

캐치볼 ⓒ 대동단결

“우리 아버지가 마지막에 하셨던 유언이 돌아가시기 5초 전, 아들이랑 공받기를 하고 싶다… 아들을 낳으면 꿈이 있었대요. 그 얘기를 56년간 안하고 계시다가 돌아가시기 5초 전에 그 얘길 하고 돌아가셨어요. 제가 그걸 눈앞에서 듣고서 공 가져올 틈도 없이 돌아가셨어요. 그게 10년 동안 한이 됐어요. 작년 정도에 그 한이 풀렸나 봐요. 그래서 그 노래를 만든 거 에요. 캐치볼이란 노래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 대동단결

 

공받기 하라고 갖다 놓은 거 에요. 좀 하라고. 하나 가져가실래요? 캐치볼 장난감을 하나 건네는 그. 별것 아닌데, 별것 아닌 걸 못하고 너무 열심히 사는 것에만 매달렸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아들. 

 

모든 한계와 불안과 조급함이 사라지는 순간 ⓒ 대동단결

모든 한계와 불안과 조급함이 사라지는 순간 ⓒ 대동단결

 

그는 열심히 살지만 너무 빨리 가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인생의 반을 함께 하고 있는 음악, 디자이너로서의 현실과 같은 본업이 있지만, 대동단결을 꾸리며 인생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챙기며 살고 있습니다. 빨리 살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삽니다. 10시간을 하든 20시간을 하든 질리지 않는 일이 있어 행복하고, 자신의 음악을 듣고, 공간을 찾는 이들이 있어 좋다고. 아지트 대동단결에서 내려다보는 대전, 모든 한계와 불안과 조급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박정훈은 밴드 <자판기커피숍>의 보컬•베이스를 맡고 있으며, <유니크디자인>이라는 디자인회사, 그리고 <대동단결>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의 물리적 배경이 된 대동단결은, 빈티지소품샵을 비롯하여 일상, 소모임, 전시, 공연, 파티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대동단결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대동 1-352

-instagram: dddg.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