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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전시ㆍ강연

대전시민대학, 전통매듭공예가 윤승이선생님을 인터뷰하다



대전시민대학, 전통매듭공예가 윤승이선생님을 인터뷰하다.




대전시민대학 장암관 1층 휴게실에서 윤승이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눈에 띄게 세련되고

곱게 나이든 어르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시민대학에서 우리 나라 전통 매듭공예를 강의하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윤승이 선생님이 올해 78세라는 나이가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실제로 만나면 10살 이상 젊게 보기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윤승이선생님을 인터뷰하고 강의실 (목요일/2시부터4시 장암관 503호)에 직접 가서 참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당신의 78세는 어떨까요?



대전시민대학은 구)충남도청을 대전시민들의 학습의 장으로 만든 뜻 깊고 소중한 장소입니다.

다른 도시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로 소문난 시민들의 교육장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지 42년이나 됐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책을 좋아하고 책대여점도 12년간 운영한 적이 있어서

비교적 책을 많이 읽은 편입니다. 그러나 규칙적인 교육은 학교 교육으로 끝났습니다.




대전시민대학은 시민이 원하고 필요한 강좌를 800여개 개설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시민 교육기관입니다.

사실 젊은이들은 학교 교육뿐 만이 아니고 학원 등 배울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40대 이상 중장년층과 노년층은

마땅히 배울 장소가 없었습니다.


 대전시민대학은 구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이나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백화점이나 마트의 문화 교실과는

차원이 다른 교육기관입니다. 시민들이 배우고 싶은 강의도 많지만 재능이 있는 시민들이 가르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윤승이 선생님 같이 한국전통 매듭공예를 전통학교에서 배우고 개인샵을 10년을 운영한 실력있는 분이

대전시의 주부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는 곳이 대전시민대학입니다.

여러분의 60대와 70대 80대는 어떨 것 같습니까? 누구나 노년은 찾아옵니다. 그 때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저는 윤승이 선생님을 만나고 그 점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2. 60세에 남편을 사별하고 시작한 매듭공예.



윤승이선생님은 30대에 여러가지 취미 생활을 할 정도로 생활이 부유했습니다. 꽃꽂이 그림 서예 바느질 등

여러가지를 배우던 중 전통 매듭에 적성에 맞고 재미를 느꼈습니다.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의 병수발을 13년 하다가 선생님이 59세에 남편의 고향 충남 보령에서 가까운 대전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다음 해에 남편이 별세했습니다.






3, 절망을 극복하려고 서울의 전통 공예학교에 입학하다.



61세에 선생님 보다 4살 연하인 김은영(무형문화제/ 매듭공예가) 선생님에게 사사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전통공예학교는 당시는 전문대학 과정이었으나 지금은 4년제 학교로 승격했습니다.




윤승이 선생님은 자격증을 취득한 후 카이스트 앞에 있는 한빛 아파트 상가에 매듭 공예점을 오픈하고

10년 정도 운영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손목에 부상이 생겨서 폐업했습니다. 손목이 완쾌 된 후에는

집에서 소규모의 학생들에게 지도 했습니다.





4. 40대 중반에 운전면허 취득한 자가운전자.


서울이 고향인 윤승이 선생님은 목소리가 낭랑하고 듣기 좋습니다. 40대 중반에 운전면허를 취득했으니

모든 면에서 선구자적인 분입니다. 남편의 병수발도 운전을 했기에 감당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석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 매듭공예를 배우러 왔습니다.

기다리는 초조함을 잊기 위해서 뭔가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진은 윤승이 선생님의 매듭 공예 작품입니다.





매듭샵을 운영할 때 모습입니다.






5, 카이스트 학생의 권유로 시민대학에 강사 지원서를 내다.


제자였던 카이스트 학생이 대전시민대학 개강과 함께 강사모집을 알려주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전에 백화점 문화교실에서도 매듭공예를 가르쳤습니다.




제가 참관 갔을 때는 4,50대 주부들이 매듭을 만드느라고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윤승이 선생님은 학생들을 일대 일로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6. 영어 연극과 가곡 합창단은 취미생활.

윤승이 선생님은 취미 생활로 영어 연극과 가곡 합창단을 했습니다.





저는 외모만 보고 참 곱게 나이든 평화로운 인생을 보내신 분으로 알았는데 남편이 13년이나 병상에 있었다니

40대의 고난이 어땠는지 상상이 됩니다. 그러나 자존감과 자기애를 가지고 60대 이후의 인생을 직접 디자인한

윤승이선생님의 인간승리에 진심으로 박수를 치고 싶었습니다.




올해 64세가 된 저는 어디를 가도 대체적으로 최고령으로 어르신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올해가 되니 제 스스로 할머니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저는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충분히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윤승이 선생님 같이 59세까지 가족과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저 자신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60대가 좋습니다. 건강을 잘 유지하며 평화롭고 넉넉하게 노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변에는 노년의 롤모델이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노부부에 대한 롤모델이었습니다. 윤승이 선생님은 자기 실현을 위한

롤모델이 됐습니다. 제가 윤승이 선생님을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