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전문화/스포츠

"2011년 한화이글스를 말하다" <14> - 2012년 한화 마운드의 기대주 "장민제"

 

2011년 일본 나가사키 마무리훈련에서 가장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장민제를 뽑을 만큼 그는 현재 2012년을 위한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다. 장민제 ..... 한화의 팬들이 장민제라는 이름을 정식적으로 기억하게 된 것은 아마도 작년이 처음일 정도로 낮설었던 장민제가 2011년 시즌 36경기에 등판하면서 한때는 선발의 한축으로 자리를 잡았었던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만큼 그는 한화투수로서 그 기량을 인정 받은 것 이다. 투구판에서 항상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공에 대해 열의를 쏟을때 그의 모습은 30대후반을 바라보는 노투수를 연상시키게도 하지만 그는 현재 1990년생 올해나이 23살의 입단 3년차 선수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팬들은 얼마나 될까? 그의 눈물나게 힘겨웠던 2011년 한해속으로 들어가보자

장민제 .... 광주제일고
충청을 대표하는 한화이글스에서 광주출신을 찾으라고 하면 머리속을 싸맬정도로 광주출신 선수를 보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런 한화의 투수들중에 광주제일고 출신 장민제는 어쩌면 특이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장민제라는 이름이 전국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고교 1년때인 2006년 봉황대기야구대회 16강전에서 화순고를 상대로 11K를 기록하면서부터다. 당시 고교1학년생이 140Km대의 직구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주목받을 만큼 큰 기대를 받았던 것 그런 기대속에 그시절 스카우터들은 장민제를 한기주급으로 생각할 만큼 기대주로 인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3학년때의 전국대회 활약속에서도 사실 그의 재능이 많은 구단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왜? 사실 1학년 시절 직구 구속이 140km를 찍을 정도였다면 3학년 시절이면 150km에는 육박했어야 했지만 그의 성장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이다. 그 시절 그는 인터뷰에서 어릴적 직구 구속이 잘나와 더 높이기위해 던졌던 것이 어깨에 무리가 갔다고 할 정도로 우직한 선수였던 것) 사실 그는 어릴적부터 기아의 팬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시절 인터뷰를 보면 꼭 기아에서 프로생활을 하고 싶다고 할 만큼 기아의 골수팬이었던 것 하지만 그의 바램은 이루어지 지지않았다. 2006년부터 투수왕국이었던 기아였기에 1순위로 정성철이라는 거물 투수를 잡은 만큼 2순위에서는 투수보다는 확실한 내야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선택이 기아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그때 2순위 1번이 바로 기아의 핵이된 안치홍이다. 하여튼 그렇게 기아의 부름을 받지는 못했지만 한화 2차 3순위의 부름을 받고 결국 한화에 입단하게 된 것 이다.


재능을 뛰어넘는 것은 노력이라고 했던가!
스카우트 리포팅을 찾아보면 장민제는 입단때부터 구속으로 압도하는 선수는 아니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어릴적 어깨부상이후에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구속에서도 그렇듯 말이다. 하지만 리포팅에도 정확히 기재되어 있는 부분은 부드러운 투구폼에서 나오는 다양한 변화구의 구질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를 다시보게 한다. 더군다나 성실하고 집념이 강하다는 부분은 그렇기에 그가 2009년에 입단을 하고서도 2010년 13경기를 뛰게 했던 것 이다. 그런 노력의 열정이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어느 누구도 장민제가 1군무대에서 선발로 등판할 것 이라고 생각을 못했던 상황들을 현실로 만들어낸 것 이다. 비록 올시즌 1승7패 1홀드 방어율 6.06에 미쳤지만 그의 패기넘치는 변화구의 향연, 낙차 큰 포크볼과 몸쪽을 파도드는 짜릿한 직구는 팬들에게 장민제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이다.

역시나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그의 모습에 있다
그런의미에서 보면 장민제의 2011년은 대단한 모습이었다. 수치상으로는 분명히 기록을 측정하기에 어려웠지만 1년 풀타임리거로 36경기에 등판을 했고 중간계투와 선발을 가리지 않고 등판을 하면서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22살 장민제에게 크나큰 문제라면 신중함이 도를 넘어설 정도로 경기를 끌고가는 운영의 문제가 아닐까?  "투수로서 신중한 것이 좋은 것인데 이것이 문제라고?" 이렇게 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의 경기운영의 모습을 보면 문제를 꼬집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모습은 올시즌 그의 등판 경기들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투구수를 볼수가 있다. 4월초반에 중간계투로 투입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4월17일 첫 선발등판에서 1 1/3이닝 투구수 50개, 4월24일 4 1/3이닝 투구수 88개, 4월 30일 3 1/3이닝 투구수 66개, 첫승을 거머쥐었던 6월16일 경기에서도 5 1/3이닝 투구수 94개를 기록을 했고 시즌 막판 등판에서 조차 너무나 신중하다는 것 이다. 이런 모습들은 어떻게보면 집중도가 높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수치상으로 나타나 있는 득점권 주자시의 상황과 비교해봐도 좋은 성적과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가 보는 장민제는 마운드에서 야구를 즐긴다기 보다는 마운드의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당연히 22살 청년에게는 너무나 높은 벽은 벽일 것 이다)


2012년 기로에선 장민제
이제 그는 기로에 서 있다. 선발로의 보직도 그렇다고 이제는 막강한 불펜에서 조차 그의 활용도는 의심을 받을 만큼 한화의 마운드의 벽은 높아진 것 이다. 그리고 몇년후에 다가올 군문제까지 가야할 길이 첩첩산중인 상황 그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대답은 아마도 입이 아닌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나가사키 마무리 캠프에서 1100개로 가장 많은 투구를 한 그의 모습에서 처럼 그는 내년을 새로운 계기로 만들기위해 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이다.  MLB의 전설 "요기베라"의 말 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장민제가 팬들에게 앞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아닐지, 2012년의 도약하는 독수리의 모습속에 장민제의 활약을 팬들은 아마도 기대할 것 이다.

@ 한화이글스



대전블로그기자단 노광호 대전시청홈페이지 대전시청공식블로그 대전시 공식트위터